[한국에서 살아보니]리디코트/옥상 정원으로 녹색 도시를

  • 입력 2003년 9월 19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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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2000년 어느 여름날의 저녁이었다. 비행기가 서울로 접어들면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에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서울은 녹색지대로 둘러싸여 있었고, 산에는 초목이 무성했으며, 큰길에도 많은 나무가 정렬해 있었다.

이 의외의 경관에 나는 말할 나위 없이 기분 좋게 놀랐다. 사실 내가 서울로 발령받은 뒤 캔버라(호주 수도)에서 한국말을 배우며 처음으로 익혔던 단어 가운데 하나가 검은 연기를 내뿜는 ‘연탄’이었다.

호주 사람인 나는 나무와 잔디를 사랑하며, 공원이나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더욱 비대칭의 조화를 추구하고,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한국의 전통 조경을 사랑한다. 서울의 주요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3개월 전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엄마가 된 내게 진정 아쉬운 것은 동네에 아이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에서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노는 모습은 큰 충격이었고, 어린이들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높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물론 호주와 달리 많은 서울 시민들은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해결책이 있다. 옥상정원이다. 한국의 많은 가옥들은 평평한 지붕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흙, 나무, 잔디(그리고 높은 난간)만 있다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내 아들이 태어난 서울의 병원 옥상에는 훌륭한 정원이 있었다.

물론 주택비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니면 그저 식탁에 음식을 올리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화초를 사고 보살피는 것 자체가 호사일 수 있다. 호주도 그런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어떤 자치정부에서는 시민들이 정원 가꾸는 일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 예로 캔버라에서는 새 주택을 사는 사람들에게 110호주달러(약 8만2500원) 상당의 나무나 관목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원예 장려 정책의 결과 숲을 베어낸 농토였던 캔버라는 지금 녹색 도시가 됐다. 원예센터도 많고, 저렴하고 손쉬운 ‘DIY’ 원예기술도 다양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원예방식은 ‘지렁이 농장 퇴비’ 방식이다. 깨끗하고 탄탄한 땅의 ‘농장’에서 키우는 지렁이들은 음식물 찌꺼기는 물론 진공청소기 먼지, 머리카락, 손톱이나 발톱, 심지어 폐지까지 먹어치운다. 이들의 배설물은 매우 기름진 퇴비가 된다. 이런 방법으로 쓰레기도 줄이고 깨끗한 공기와 건강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또 원예활동은 좋은 운동도 된다.

난 서울의 수많은 옥상이 아직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보면서 그곳에 정원이 꾸며진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내 아들은 커가면서 호주와 한국의 문화를 함께 배워 나갈 것이다. 아들이 자라면서 푸른 정원이 있는 옥상들로 가득 찬 서울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이들한테도 정말 좋은 도시가 될 것이다.

필자는 현재 출산휴가 중이다. 이 기고문은 리디코트씨 개인의 관점에서 썼으며 호주정부의 시각을 대변하지 않는다.

1965년 호주 시드니 출생으로 시드니대를 졸업한 뒤 1992년 외교관이 돼 일본과 시리아 등을 거쳐 한국에 부임했다. 이 글은 그의 개인적 관점에 따른 것으로 호주정부의 시각을 대변하지 않는다.

메리제인 리디코트 주한 호주대사관 정치담당 1동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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