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이창동 兄께

  • 입력 2003년 9월 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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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망설이다가 글을 올립니다. 90년대 초 영화담당 기자를 하면서 형이 모는 차를 타고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촬영장으로 가던 생각이 납니다. 형이 그 후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잇달아 주목받는 작품을 발표하고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게 됐을 때는 제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새 정부의 조각(組閣) 발표 하루 전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건 제게 형은 무척 곤혹스러워했습니다. 저는 대통령이 꽤 괜찮은 문화관광부 장관을 골랐다고 생각했지만 형은 끝까지 감독이고 싶어 했습니다.

취임 이후 형의 ‘언론 괴롭히기’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작가로서나 감독으로서나 누구보다도 언론의 지원과 사랑을 받았던 형이 그런 일에 앞장서 ‘총대’를 멘 것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취임 이후 단행된 산하기관 및 단체장들에 대한 편향적 인선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것도 형의 소신이 아니라 형을 장관으로 내몬 ‘완장 찬 세력’들의 코드 맞추기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문화부 홈페이지를 보니 7월 한 달 판공비로 231만200원을 쓰셨더군요. 총리가 6개월 동안 쓴 판공비가 3억6584만원이어서 하루평균 200만원에 이르고, 행정자치부 장관이 6월 한 달에만 2324만원을 지출한 것과 비교가 됩니다. 저는 총리와 행자부 장관이 과도하게 판공비를 지출한 것이 아니라 형이 판공비를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기존 공직사회에 대한 반감과 형 특유의 결벽증의 소산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부하직원들은 얼마나 조심스럽겠습니까. 그것이 공무원 조직의 생리입니다. 차관은 ‘지혜롭게’ 191만6000원을 사용했더군요. 문화부 장·차관 판공비는 연간 1억원가량 됩니다.

6월 초 호암상 시상식에서도 먼발치에서 형을 뵈었습니다. 추기경과 5명의 전현직 총리, 학·예술원 회장, 재계 원로 등 각계 인사 60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 형이 넥타이도 매지 않고 뒤늦게 나타난 것을 보고 무척 민망했습니다. 수행하고 온 과장도 캐주얼 복장이기에 “남의 잔칫집에 장관을 모시고 오면서 당신까지 그러고 나타나느냐”고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칸영화제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라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공식석상에는 예복을 입고 참석했으니 이제 국무회의와 집무 중에도 정장을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일국의 문화부 장관은 어느 누구보다 세련되고 맵시 있는 복장을 할 수 있는 예술적 안목과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직도 업무시간 외에 싼타페 승용차를 손수 운전해 다닌다면 그것도 이제 그만두십시오. 새벽이건 야간이건 운전사를 대동해 열심히 관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만나 애로사항을 듣고, 주말에는 공연 및 촬영 현장도 열심히 찾아다니십시오.

문화 예술계에서는 ‘영화감독 이창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부 장관 이창동’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는 다만 형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작품 목록)에 장관직이 부끄러운 작품으로 기록되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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