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방송 ‘몰카 저널리즘’ 위험수위

  • 입력 2003년 8월 21일 17시 36분


코멘트
양길승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향응 장면을 담은 ‘몰래 카메라(몰카)’ 파문을 계기로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의 ‘몰카 저널리즘’에 경고등이 켜졌다.

‘몰카’는 방송사의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서 흔히 사용되는 취재 기법. 방송사들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가진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몰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속임수’와 다름없으며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견이 비등하고 있다.

▽몰래 카메라 취재기법=시사프로그램 제작진이 자주 사용하는 몰카 형태는 두 가지다. 일반 ENG 카메라나 6mm 카메라를 전원을 끈 것처럼 옆에 두고 찍는 기법과 작은 손가방이나 노트 등에 첨단 초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취재하는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시 사용하는 ‘몰래 카메라’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왼쪽부터 박수홍이 안경에 몰래카메라를 장착하고 일본내 한국인 노숙자 실태를 취재한 MBC ‘!느낌표’, 10대 티켓다방을 고발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모 종교단체의 집회를 잠입촬영한 KBS2 ‘추적 60분’. -방송화면 촬영

초소형 몰카는 사이비종교단체, 퇴폐나 도박 현장 등 폭로 취재에 주로 사용된다. 초소형 카메라의 렌즈는 직경 5mm 내외로 노트나 윗옷의 소매 등에 감쪽같이 부착된다. 취재진의 와이셔츠 소매나 작은 손가방의 틈새 정도면 이 렌즈를 설치하기에 충분하다. 요즘에는 안경테와 볼펜, 휴대전화에 렌즈를 부착한 최첨단 몰카가 사용되기도 한다.

몰카 촬영 전문 배우도 동원된다. 한 SBS PD는 “잠입취재는 배짱과 자연스러운 연기가 중요하다”며 “방송국마다 경험 많은 몰카 전문 엑스트라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취재원들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여성 전문가들이 나서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공무원이나 기업체 직원 등 취재원들이 가장 많이 당하는 몰카는 꺼진 것처럼 보이는 일반 카메라. 방송사 PD나 기자들이 인터뷰 전에 미리 카메라 스위치를 켠 채로 갖고 들어와 소파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촬영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무릎 아래나 하반신을 촬영한다. 예전엔 카메라가 촬영 중일 땐 ‘빨간불’이 켜졌지만 요즘에는 녹화 중에도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는 카메라가 많다. 한 KBS PD는 “‘몰카’를 찍은 뒤 방송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면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대부분 사전 허락 없이 방송하고 인터뷰가 어려운 인물은 섭외 때부터 몰래 녹음한다.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음성 변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고 밝혔다.


▽‘몰카 저널리즘’의 법적 논란=서울지법 남부지원은 1997년 8월 MBC ‘시사매거진 2580’이 대학가 신입생 환영회의 문제점을 짚은 ‘공포의 통과의례’를 제작 방영하면서 몰카로 취재원들의 사생활과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방송사측에 대학생 4명에게 1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 판결은 몰카를 이용한 방송 보도에 경종을 울렸으나 오히려 방송사들의 몰카 사용은 남용에 가까운 수준으로 늘어났다.

국내 방송사들은 몰카 방송이 보도윤리에 어긋나지만, ‘공익(公益)’을 위한 보도에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강성주 MBC 보도제작국장은 “몰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대면해서 찍기가 어려운 경우라고 판단될 때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상운 변호사는 “취재 편의를 위한 속임수인 몰카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며 “과속이나 음주운전을 단속하기 위한 경찰의 함정수사가 비난받듯 몰카는 공익성이 강조되는 방송이 스스로 범법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사례=미국에서도 1980년대 말∼90년대 초 ‘몰카 프로그램’이 극성을 부렸다. 그러나 1997년 ‘푸드 라이온사 판결’ 이후 시사프로그램에서의 몰카 사용 규제가 본격화됐다. 이 사건은 식료품 체인회사인 ‘푸드 라이온’이 ABC방송의 PD가 몰카를 찍기 위해 위장 취업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550만달러의 배상판결을 받아 낸 것. ABC방송의 PD는 5년 전 ‘푸드 라이온’이 썩은 쇠고기를 표백제로 씻는 장면을 몰카로 폭로한 적이 있다.

이후 미국 ABC방송은 몰카를 사용하기 전 반드시 회사측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을 바꿨다. ABC방송측은 정보를 얻기 위해 가능한 수단이 모두 사용됐는지 검토한 뒤 몰카 사용보다는 보강 취재를 지시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미국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을 방영하고 있는 CBS방송도 100여쪽에 이르는 취재 활동 규범서에서 몰카 사용은 물론 비밀녹음기를 사용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