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06>漸 入 佳 境(점입가경)

  • 입력 2003년 8월 17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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漸 入 佳 境(점입가경)

漸-점차 점 佳-아름다울 가 泥-진흙 니

步-걸음 보 痴-어리석을 치 蔗-사탕수수 자

모 재벌회장의 투신자살사건으로 전국이 온통 충격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더니 이번에는 부당한 정치자금 수수문제로 다시 한 번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전직 정치인이 그 재벌을 상대로 수백 억 원이나, 그것도 경영난으로 쓰러져 가는 상태에서 받아냈다 하여 波紋(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부당하고 더러운 돈이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여겨지는 政界(정계)는 지금 벌집을 쑤셔놓은 듯 야단이다. 벌써 명단이 적힌 괴문서가 난무한다니 당사자들이 느끼는 불안이야 오죽할까. 그럼에도 가관인 것은 이번 사건을 놓고 與野(여야)가 벌이고 있는 泥田鬪狗(이전투구)식 싸움이다. 孟子(맹자)에 보이는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가 생각난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소환된 피의자의 태도다. 증거가 뻔한데도 무조건 부인하고 든다. 어느 하나 ‘내가 했소’ 하고 당당하게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증거를 눈앞에 들이밀어도 ‘아니오’가 아니면 ‘모르쇠’다. 그렇다면 이건 지독한 ‘鐵面皮’(철면피)가 아닌가.

이처럼 거짓말로 일관하다 보니 수사가 진행될수록 논리적인 모순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제 꾀에 스스로 걸려들고 있는 것이다. 지켜보고 있는 시민으로서는 ‘漸入佳境’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東晉(동진)은 비록 版圖(판도)도 작고 國祚(국조)도 쇠잔했지만 文藝(문예)에서는 전성기를 이루어 詩書畵(시서화)에서 두루 뛰어난 명인을 배출했던 시대다. 즉 田園詩人(전원시인) 陶淵明(도연명. 372-427)과 書藝(서예)의 王羲之(왕희지. 321-379), 그림의 顧愷之(고개지. 344-405)가 한 시대를 風靡(풍미)했던 것이다.

그중 顧愷之는 중국 山水畵(산수화)의 鼻祖(비조)로 추앙되는데 人物畵(인물화)까지 뛰어났다. 그는 재능이 넘쳐 문학과 서예에도 능했을 뿐만 아니라 평소 기이한 행동과 재치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三絶’(삼절. (화,획)絶, 才絶, 痴絶)이라고 불렀다.

痴絶(치절)이란 독특한 유머감각을 말한다. 그는 甘蔗(감자·사탕수수)를 즐겨 먹었는데 늘 가는 줄기부터 먼저 씹는 버릇이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묻자 태연하게 말했다.

‘그야 간단하지. 점점 갈수록 단맛이 나기 때문이지.’(漸入佳境)

이 때부터 漸入佳境이라면 경치나 문장, 또는 일의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줄여서 蔗境, 또는 佳境이라고도 한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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