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압수수색영장 논란]“언론자유 침해” “정당한 法집행”

  • 입력 2003년 8월 5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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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입수한 몰래카메라 촬영 테이프. -SBS TV촬영
SBS가 입수한 몰래카메라 촬영 테이프. -SBS TV촬영
검찰이 5일 오전 양길승(梁吉承) 대통령제1부속실장의 ‘향응 장면’이 찍힌 ‘몰래 카메라’의 테이프 원본을 요구하며 법원으로부터 SBS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것과 관련해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원 보호를 제한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SBS는 법률전문가 언론학자 등과 의논한 결과 “취재원 보호라는 측면에서 좋지 못한 선례가 될 수 있고, 제보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조언을 받고 일단 검찰의 영장 집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기자협회(회장 이상기)는 이날 성명을 내고 “현재 수사 추이를 볼 때 언론사 압수수색이라는 극단적인 조치 없이 검찰의 독립적인 수사만으로도 얼마든지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는 상황”이라며 “검찰의 수사 편의주의에 의해 언론의 절대적인 명제인 ‘취재원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가 훼손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는 “미국의 법원 판례에는 사건 수사의 최종단계에서 기자를 통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결정적 증거를 얻을 수 없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취재원을 밝히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며 “만일 이번 사건이 선례가 된다면 앞으로 언론에 고발된 사회부조리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늘 기자수첩이나 원본 테이프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누가 언론에 제보를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대한변협 도두형 공보이사는 “수사권이 없는 언론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면 ‘취재원 보호’가 필수인데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너무 쉽게 발부한 것 같다”며 “기자가 테이프를 조작하거나 가공했다는 혐의가 없는데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언론의 취재 활동에 큰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법률가들의 견해도 있다. 김선수 변협 사무총장은 “취재원 보호에도 한계가 있으며 범죄행위에 대해 수사상 필요하다면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상운 변호사도 “취재원 보호 원칙은 가톨릭 신부의 ‘고백성사 비밀보호 원칙’처럼 언론윤리에 속하는 것이지 법적으로 보호되는 ‘언론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국내 사례=국내에서는 1989년 7월 10일 서경원 의원 비밀 방북사건 당시 안기부가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 혐의를 받고 있던 한겨레 신문 윤재걸 기자와 장윤환 편집위원장의 신문사 내 책상과 자료철 등을 압수수색을 실시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현재 한국의 법령에는 ‘취재원 보호’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해외 사례=현재 미국에서는 연방 차원의 법률은 존재하지 않지만, ‘취재원 보호’에 관한 많은 판례가 있다. 독일에서도 1975년에 연방형사소송법상에 ‘신문과 방송의 협력자들의 증언거부권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돼 ‘취재원 보호’를 법률에 정하고 있다.

취재와 관련한 ‘비디오테이프’ 제출 논란은 1970년 미국 뉴욕 타임스의 콜드웰 기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콜드웰 기자는 ‘블랙 팬더 당’ 등 흑인 폭력단체의 취재를 담당했는데 대배심으로부터 당 간부를 인터뷰한 원본 테이프 자료를 제출하라는 소환장을 받았다.

콜드웰 기자는 “증언을 하게 되면 수정 헌법 제1조를 치명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법원은 “정부가 필수적이고 압도적인 이익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콜드웰 기자는 ‘증언거부권’을 가진다”고 판결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野 “검찰 면피성 과잉대응”▼

한나라당 홍희곤(洪憙坤) 부대변인은 5일 검찰이 SBS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데 대해 “검찰은 SBS에 ‘제보자 보호’라는 언론의 기본 책무조차 내팽개치기를 강요했다”며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언론의 자유는 어떤 경우든 침해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 검찰의 수사력이 언론사에 제보된 테이프를 강제로 빼앗지 않으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냐”며 “그렇지 않다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對)언론 전쟁 선포에 맞춰 검찰이 면피성 과잉대응을 하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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