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초기作 '아침의 유혹' 발굴

  • 입력 2003년 7월 2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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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대표적 참여시인으로 손꼽히는 김수영(1921∼1968·사진)의 초기 시 ‘아침의 유혹(誘惑)’이 새롭게 공개됐다. 김수영은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는 내용의 ‘풀’ 등의 작품을 남긴 대표적인 ‘참여시인’.

민음사는 ‘김수영 전집’의 개정판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시인의 여동생인 김수명씨의 작업 노트에 기록된 메모를 근거로 1949년 4월 1일자 ‘자유신문’에 게재된 ‘아침의 유혹’을 찾아냈다.

‘나는 발가벗은 아내의 목을 끌어안았다/산림(山林)과 시간(時間)이 오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일부 훼손돼 알아보기 힘든 글자도 있지만 김수영의 초기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전집에는 1950년 이전 작품 8편이 수록돼 있었다.

민음사 박상순 주간은 “‘아침의 유혹’에는 시인의 정열과 한국 현대시의 모더니즘의 특성이 나타나며 ‘서울역의 화환’ ‘U.N위원단’ 등의 시어를 통해 광복 직후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81년 처음 간행된 ‘김수영 전집’은 지금까지 시와 산문편이 각각 27쇄, 25쇄를 찍는 등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 왔다. ‘아침의 유혹’을 포함해 22년 만에 선보일 개정판은 5일 발간된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아침의 유혹 ▼

나는 발가벗은 아내의 목을 끌어안았다

산림(山林)과 시간(時間)이 오는 것이다

서울역에는 화환(花環)이 처음 생기고

나는 추수(秋收)하고 돌아오는

백부(伯父)를 기다렸다

그래 도무지 모―두가 미칠 것만 같았다.

무지무지한 갱부(坑夫)는

나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것은 천자문(千字文)이 되는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스푼과 성냥을 들고

여관(旅館)에서 나는 나왔다

물속 모래알처럼

소박(素朴)한 습성(習性)은 나의 아내의 밑소리부터 시작(始作)되었다

어느 교과서에도 질투의 ○○은 무수하다

먼 시간(時間)을 두고 물속을 흘러온 흰 모래처럼 그들은 온다

U.N위원단이 매일 오는 것이다

화환이 화환이 서울역에서 날아온다

모자 쓴 청년(靑年)이여 유혹(誘惑)이여

아침의 유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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