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제3회 투병문학상 최우수상 권금옥씨 '우리 엄마'

  • 입력 2003년 6월 1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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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와 인제대 백병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MSD가 후원한 제3회 투병문학상 공모에는 환자는 물론 간호를 맡은 가족과 친구 등 모두 63명이 투병기를 보내왔다. 이시영 김민숙 김사인 서홍관씨 등 유명 시인과 의사들이 심사한 결과 어머니의 폐암 투병 내용을 감동적으로 서술한 권금옥씨(46·여·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우리 엄마’가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권씨의 수기를 요약해 소개한다. 》

찜통더위에 장대비가 금방이라도 퍼부을 기세였던 1995년 6월초 어느 날, 엄마가 옆구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엄마는 탱크처럼 강한 분이었기 때문에 2, 3일 약을 먹으면 훌훌 털고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67세지만 50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젊고 건강했고 매년 정기검진을 받았기 때문에 한 때 마음을 놓기도 했다. 정말 그렇게 빨리 하늘나라로 가실 줄은 몰랐다.

엄마가 폐암 진단을 받던 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데다 세 딸이 모두 직장을 다니는 바람에 홀로 찾은 병원에서 벼락같은 얘기를 들어야 했던 당신은 얼마나 쓸쓸하셨을까.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S병원에서 폐암 2기란 진단이 내려졌다. 의사들은 오른쪽 폐에 있는 작은 암 덩어리를 제거하기로 했다. 왼쪽 갈비뼈 근처에 보이는 시커먼 덩어리는 얼마 전 당한 교통사고의 흔적으로 여기면서….

오전 8시 수술실에 들어가는 엄마의 누운 모습을 보며 자꾸 구슬픈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8시간 동안 치러진 수술은 잘 끝났다. 담당의사는 방사선 치료나 항암제 복용도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뻤다. 이제 실밥 뽑고 퇴원하는 수순만 남은 것 같았다.

들뜬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수술을 받지 않은 왼쪽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했는데…. 우리는 엄마에게 곧 괜찮을 거라며 참으라고만 했다.

퇴원한 뒤 엄마는 다른 식구에게 부담이 될까봐 한밤에 집 밖에서 끙끙 앓는 적이 많았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재입원을 권했다.

그날 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결과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나왔다.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 이미 폐암 말기라는 것이다. 엄마를 수술했던 의사는 “100명에 한명 꼴로 검사결과가 잘못되긴 하는데 정말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충격과 허탈감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의사는 왼쪽 갈비뼈를 떼어 내고 방사선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나는 나대로 의료사고라고 판단해 증거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일부러 이렇게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이제 내가 갈 시간이 돼서 그런 거야”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엄마는 또 의사에게 화낸 것을 사과하라고 했고 회진 온 의사에게도 “두 번이나 나를 수술하느라 얼마나 힘드세요. 편안하게 마음 먹으세요”라고 말했다.

수술 후 암과의 힘겨운 투쟁이 시작됐다. 65kg이던 체중은 한 달 만에 25kg으로 빠졌다. 당신께서 ‘살을 도마에 올려놓고 다지는 듯한 고통’이라고 말할 만큼 처절한 사투가 계속됐지만 변변한 약도 없었다.

그러던 중 방광으로 암이 전이됐고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엄마는 기도에 몰두하셨고 이 세상 살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을 만나셨다. 허리 다쳤을 때 찜질을 해줬던 아랫방 아기엄마, 입맛이 없을 때 맛있는 반찬을 싸들고 오신 친구들…. 엄마는 그렇게 삶을 정리하고 계셨다.

암 환자 병실은 마치 시골장터 같다. 슬픔, 연민, 사랑, 웃음, 안타까움, 눈물 등 없는 게 없다. 옆 침대의 말기 간암 50대 환자의 큰딸은 엄마가 살아있을 때 결혼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혼수를 준비했다. 앞 침대 환자의 보호자는 직장에서 퇴근한 뒤 병실을 찾을 때마다 상복을 싸가지고 온다.

어느 날 엄마는 우리 딸들을 불러 장례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위는 양복과 검은 넥타이, 흰 와이셔츠를, 딸들은 검은 한복을 각각 준비하고 영정에 쓸 사진도 미리 확대하라고 하셨다. 장례 음식은 넉넉하게 해 서운한 말 듣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다음 천국에서 다시 만나니까 울지 말라고 하셨다. 며칠 뒤 엄마는 조용히 아주 깊은 잠에 드셨다.

엄마의 일생 전체가 우리 세 딸에겐 원래 모범이었다. 그렇지만 1995년 6월부터 11월까지 투병했던 6개월은 당신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보여준 시간이었다. 매일 죽음의 경계를 드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았던 엄마의 담대함과 관용은 지금 생각해도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부분이다.

엄마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며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둘째 딸이 손 모아 기원한다.

▼심사평▼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망각하고 어떤 질병이 선고되었을 때 “하필이면 왜 나에게…”라고 생각하면서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를 필연으로 여기면서 질병과의 기나긴 투쟁에 돌입한다.

올바른 치료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지다. 또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가족간의 이해와 사랑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투병기엔 ‘나’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의 고통과 눈물, 헌신이 들어있어 읽는 사람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최우수상으로 뽑힌 권금옥씨의 ‘우리 엄마’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한 한 어머니의 초상을 마치 단편소설처럼 훌륭하게 표현한 글이다. 어머니가 담당 의사의 손을 붙들고 “두 번이나 수술해 주시느라 애쓰신다”고 한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우수상에 뽑힌 강오섭씨의 ‘아내의 신부전증에 대한 나의 투쟁’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아내에게 신장 한쪽을 이식한 감동적인 글이다.

또 다른 우수상인 이경록씨의 ‘눈을 떠보니’는 5세 때부터 ‘다발성골단 이형성증’이란 희귀병을 앓아온 청년이 이를 딛고 세상에 도전하는 밝고 씩씩한 글이다.

입상하지 못했으나 정성들여 글을 보내주신 분들의 쾌유를 빈다.

심사위원장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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