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자연, 풍경, 그리고 인간'…서양 풍경화의 자연

  • 입력 2003년 5월 30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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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풍경, 그리고 인간/마순자 지음/425쪽 2만7000원 아카넷

지난 겨울 소백산에 올랐다. 소백 능선의 겨울바람은 몹시 매섭다. 그 매서운 바람을 헤치고 주봉인 비로봉에 섰을 때, 소백은 나에게 하늘에서 땅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설백의 위용을 펼쳐 보여 줬다. 가슴 깊이 큰 아름다움을 느꼈다.

근대의 서양은 자연의 거대한 힘이나 규모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위와 같은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졌다. 칸트나 버크 등의 철학자들은 위와 같은 아름다움을 ‘숭고’라 부르며 이론적인 분석을 행했고, 프리드리히나 터너 등의 낭만주의 화가들은 그 ‘숭고’를 풍경화 속에 담으며 예술적 재현을 꾀했다.

이 책은 자연을 그리고 그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느낌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시켜 놓은 풍경화에 대한 연구다. 풍경화 속에는 자연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느낌과 생각이 함께 담겨 있다. 자연은 인간을 통해 풍경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서양 풍경화의 역사를 그 속에 깃든 인간의 자연관과 함께 펼쳐 보이고 있다. 그는 1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서양의 풍경화를 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그리고 세 가지 유형의 특성과 그 유형에 담긴 인간의 자연관을 분석했다.

“일상적으로 대하는 자연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할 자연”을 그리려고 한 푸생과 클로드의 고전주의 풍경화 속에는 “자연은 현실의 대상이며 인간은 그것을 파악하고 사용하는 주체”라는 자연관이 담겨 있다.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을 그린 터너와 프리드리히의 낭만주의 풍경화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자연이 작고 유한한 인간을 구원해 주리라는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과 같은 풍경’ 그리고 ‘자연과 같은 예술’을 모색하며 따스하고 포근한 자연을 그려나간 컨스터블이나 바르비종파의 풍경화 속에는 인간과 자연의 유순한 화해가 깃들어 있다.

저자는 20세기 이후 펼쳐진 현대미술 속에서도 위와 같은 세 가지 유형에 담긴 자연관이 계승되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20세기 초의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은 “도시 삶의 불안을 원초적 자연에서 보상받고자 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전통을, 가장 최근의 생태주의 미술은 “인간이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서 다른 모든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으로 귀속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자연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자연에 대한 회화적 묘사와 그 묘사에 담긴 인간의 자연관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나간다는 점에서 풍성한 인문학적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현재에 대한 반성 및 미래에 대한 모색으로 연결되는 생동감을 지닌다. 저자는 자연을 파헤치고 자연으로부터 돌출되는 대지미술보다는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이 되는 생태주의미술을 옹호하며 ‘에코토피아의 봄’이 오기를 고대한다.

그렇지만 정보가 많음이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정보에 대한 정리가 더 적절히 이뤄졌으면 책읽기의 즐거움이 늘어났으리라는 아쉬움이 든다. 저자가 후속작업으로 약속한 ‘한국현대회화 속에서의 자연’이라는 연구를 통해서는 이런 아쉬움이 메워지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자연뿐만 아니라 생명, 죽음, 진리, 종교, 욕망 등 주요한 인문학적 주제에 대한 미술적 성찰을 자극하는 모범이 되었으면 한다.

김진엽 홍익대교수·미학 jinyup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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