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美-EU "미워 미워"

  • 입력 2003년 5월 29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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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미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연초에는 이라크전의 유엔 승인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독일 등 EU 주도국과 미국이 대립했다. 과거 군사동맹관계가 굳건했던 냉전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이라크전이 조기에 마무리되자 양 진영 사이의 갈등도 봉합되고 공조체제가 복원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지금 양쪽의 갈등은 정치 군사 분야에서 경제 분야로 더욱 확산되는 실정이다.

클린턴 정부 때만 해도 양 진영은 ‘범대서양 경제파트너십’이라는 끈끈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무역 분쟁 사례가 급증하고 그 규모도 점차 대형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소한 시비가 악화돼 양진영의 본격적인 ‘무역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최근 EU는 “미국이 ‘해외 판매 법인의 면세법’을 9월말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2004년 1월부터 총 40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부시 행정부에 통보했다. 양 진영이 치열한 경쟁관계 있는 화학, 제약, 기계 분야에서 미국 수출기업들이 이 제도를 통해 대규모 소득세를 면제 받고 있다는 게 EU의 주장.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위배되는 정부보조금을 이들 기업들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유럽의 항공기 산업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현재 EU의 에어버스사는 2006년 운항을 목표로 초대형 슈퍼점보제트기(A380)를 개발 중이다. 이 제트기 개발이 완성되면 에어버스사는 그 동안 세계 대형 여객기 시장을 독점해온 미국의 보잉사와 치열한 경쟁을 할 전망. 미국은 “EU가 A380 생산에 국가보조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EU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밖에 바나나, 호르몬쇠고기, 철강 등 여러 분야의 분쟁이 현재 WTO 분쟁 해결기구에 상정돼 있거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런 대립은 앞으로 ‘환율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올 들어 미국은 스노 재무장관의 의도대로 달러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는 유로에 비해 급격히 가치가 절하돼 5월 중에는 유로 대비 가치가 사상 최저치에 근접했다. 미국의 속셈은 미국 내 외국인 투자자금이 급속히 이탈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당히 달러를 약세로 유지함으로써 제조업의 가격경쟁력을 복원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수출증대-경제성장’을 이뤄냄으로써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고 디플레이션 우려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EU는 출범 이후 급락했던 유로화의 위상회복을 위해 달러화 약세 기조를 방관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기업 수출경쟁력이 약해져 디플레이션 상황이 심화하면서 EU는 더 이상 유로 강세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앞으로 양진영의 정책공조가 없다면 이런 갈등은 환율전쟁으로 치달아 국제 금융시장이 다시 한번 불안해 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국제 금융가에선 6월초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리는 서방선진7개국(G7·올해는 중국포함 G8)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여기서 미국과 EU 사이에 우호협력관계가 조성돼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공조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러나 미국 공화당은 ‘개방적인 세계화’ 보다는 ‘폐쇄적인 보호무역주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국내총생산(GDP) 5% 선을 육박해 미 정부는 통상정책을 무기로 현안타결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과거를 회고해 보면 미 정부가 통상정책에 무게를 두는 한 달러화는 당분간 강세로 돌아서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반기 중에도 세계 경제는 보호무역과 디플레이션 우려 탓에 회복의 전기를 맞이하기 힘들 것으로 우려된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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