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키워요]그림책 `삐비이야기` 펴낸 송진헌씨

  • 입력 2003년 5월 20일 2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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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10년 만에 사진 찍네요. 그만 찍으세요. 아이가 둘이니 집사람이랑 아이들 사진밖에 없대요.”

그림에 이야기까지 곁들이기는 첫 작품인 ‘삐비이야기’(창작과비평사)의 송진헌씨(41)는 카메라 앞에서 내내 땀을 닦았다. ‘삐비이야기’가 그랬다. “뭐, 이런 그림책이 다 있어”라고 미뤄뒀지만 빚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시 펼쳤고, 다시 보고 읽고 나서도 개운치 않았다. 마음 속에서 내내 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아스라한 기억 속에 ‘삐비’를 묻어두고 있지 않는가.

‘삐비이야기’는 무채색으로 바랜 어린시절, 나뭇가지로 머리를 때리며 숲 속을 혼자 돌아다니던 아이 삐비에 관한 추억이다. 자폐아인지 정신지체아인지 분명치 않으나 동네아이들과 ‘달랐다’. 아이들은 삐비를 피해다녔지만 화자인 ‘나’는 삐비가 신기해 삐비를 따라 숲 깊숙이 들어간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도 피해다닌다. 어느덧 학교에 들어간 나는 새 친구를 사귀게 되고 숲 속에서 삐비와 마주치지만 자신도 모르게 도망친다….

전북 군산 출신의 송씨는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자꾸 삐비가 생각났다”며 “몇 년 전 고향에 사시는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열서너살 때 실종돼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당시 종이공장에 딸린 측백나무 숲은 엄청나게 컸어요.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숲에는 종이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사택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아버지가 동력과장이셔서 우리가족도 사택에 살았지요. 그러나 종이회사가 망하면서 사택에서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제 기억 속에서 숲도, 삐비도 사라졌지요.”

그러나 숲에서 먼저 사라진 것은 송씨였다. 8남매의 여섯째였던 송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형과 함께 서울로 ‘유학’온다. 대학(홍익대 서양화과)에 들어가기 전 서울에서 송씨는 삐비처럼 늘 외톨이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삐비 생각은 나지 않았다.

“신체장애아에 대한 편견은 많이 사라졌지만 자폐아나 정신지체아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부족해요. 이같이 장애를 지닌 아이 뿐 아니라 또래집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괭이부리말 아이들’ ‘너도 하늘말나리야’에 그림을 그린 송씨는 “처음으로 글까지 써 삐비에 대한 미안함, 아니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을 드러내 놓고 보니 그림만 그렸을 때와 달리 숨을 곳이 없다”며 “무엇을 확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이 ‘그림이 예쁘다’ ‘삐비같은 친구도 있네’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책 앞 쪽 ‘사랑하는 강이에게’라는 헌사(獻辭)에서 ‘강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열한살짜리 첫딸이에요. 몸이 아파요. 정신지체아예요… 일곱 살 때 걸었죠. 기적같았어요. 못 걸을 줄 알았습니다.”

송씨가 “커피를 마시자”며 고개를 돌렸고 기자는 그제야 커피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고 자판기에 넣을 동전을 찾느라 허둥댔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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