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바오로딸 수도회 '열린 선교'…유쾌한 '말씀' 경쾌한 '찬양'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06분


코멘트

‘자, 셋 하면 신고 있던 슬리퍼를 공중으로 힘껏 차세요. 하나∼둘∼셋.’

수녀님의 구령에 맞춰 4명의 아이들이 하늘 높이 발길질을 한다. 아이들은 슬리퍼가 땅에 떨어졌을 때의 모양에 따라 윷말을 움직이는 ‘슬리퍼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수녀님 노∼올자’=평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수녀원. 하지만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강북구 미아9동 성바오로딸 수도회의 문이 활짝 열렸다. ‘친구야 노∼올자’라는 주제로 초등학생과 부모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가족과 어린이가 함께 하는 영상잔치’가 열린 것.

올해로 7번째인 어린이날 영상잔치는 바오로딸 수녀원의 독특한 행사. 자녀들을 위한 부모의 기도, 즐거운 레크리에이션, 안 쓰는 아이들 물건을 서로 바꾸는 나눔의 장터 등 보다 뜻 깊은 어린이날을 지내도록 마련한 ‘패키지’형 행사다.

초등학교 6, 4학년 남매를 데리고 참가한 문정순씨(경기 부천시 고강동)는 “놀이공원에서 기구 타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며 짜증내는 것보다 훨씬 즐겁고 가족끼리 보다 친밀하게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점심 먹고 난 뒤에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가르치기도 했다. ‘사회 있을 때 이런 쪽에서 한 솜씨 했던’ 예비수녀가 춤을 지도하는데 연결 동작이 제법이다.

이 행사는 입소문이 나 있어 2주 전에 이미 참가 예약이 끝났을 정도. 정마리아 수녀는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 종교적 행사를 빼고는 수녀원에서 가장 큰 행사”라며 “가족과의 소중한 순간을 영상에 담아 가족간의 우의를 다지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매스컴 선교=‘영상잔치’처럼 수녀원을 개방하는 것은 무척 드문 일. 이는 바오로딸 수도회의 선교 활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1960년 국내에 들어온 바오로딸 수도회는 책 음반 비디오 사진 TV 라디오 등 모든 대중 매체를 통해 하느님의 복음을 알리는 선교 활동을 소명으로 한다. 최근 교황청으로부터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 품을 받은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1884∼1971)가 1915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설립했다.

수도회 소속 129명의 수녀들의 직분은 매우 다양하다. 출판기획자로 필자를 섭외하러 다니거나 무거운 방송용 기재를 들고 영상을 담아내며 음반 프로듀싱까지 해낸다. 평화방송에 파견돼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수녀도 있고 서울 명동 성바오로서원 등 전국 13개 서점에서 책을 파는 수녀도 있다.

이들은 1년에 평균 50종 가까운 신간을 내고 각종 음반도 낸다. 특히 수녀들이 직접 합창단을 만들어 ‘마리아의 노래’ 등 성가집은 물론 ‘행복한 과일가게’와 같은 2개의 대중가요 음반을 냈다. 올 가을에 생활성가 음반을 낼 예정.

한 수녀는 “음반 내면 두세 달은 매일 밤 12시까지 노래연습에 몰두해야 하는데…”라고 걱정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인터넷 활동도 열심이다. 홈페이지(www.pauline.or.kr)의 방문객수가 하루 7000∼8000명. 가톨릭 관련 사이트 중 서울대교구의 ‘굿뉴스’에 이어 방문객수가 두 번째로 많다. 매일 기도주제를 주고 인터넷상으로 기도 서원을 하는 ‘사이버기도실’이 인기가 높다.

▽쾌활한 수녀님들=수도회의 허락을 받아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봉쇄구역에 들어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야채샐러드에 생선 조림, 김 등 깔끔한 식단이다. 식사 중이던 수녀들은 이방인의 방문에도 놀라지 않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엄숙한 분위기의 식사시간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들은 ‘친교’를 위해 즐겁게 떠드는 것이 관행이라며 기자에게 수없이 말을 던졌다.

대화 주제는 수녀원 내부 일부터 정치 사회까지 막힘이 없다. 북한 핵 문제도 나오고 간혹 ‘맨땅에 헤딩’하기와 같은 ‘세속적 표현’도 튀어 나온다. 좀 늦게 참석한 수녀님께 “같이 식사하자”고 했더니 “저는 워낙 식사량이 많아서 속도를 맞추지 못할 것 같다”며 재치있게 응대한다.

오헬레나 수녀는 “이곳 수녀들은 3년에 한 번씩 직분을 바꾸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회의 전문가보다는 테크닉 면에서 많이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열성은 어느 전문가 못지않다”고 말했다.

수도회를 나오다가 벽에 걸린 한 글귀에 시선이 멈췄다. “복음 때문에 성바오로딸들은 시간과 정열과 생명까지도 바친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