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서현/건축은 '기술競技’가 아니다

  • 입력 2003년 5월 2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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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음악은 위대한 건축이다. ‘푸가의 기법(Die Kunst der Fuge)’은 차곡차곡 벽돌 쌓듯 치밀하게 구축해나간 음악이다. 음악이 얼마나 정교한 구조체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작이다. 중간에서 음 하나를 빼내면 전체가 무너져 내릴 만큼 꽉 짜인 구성을 갖고 있다. 이 건축적 음악은 인류가 바흐를 통해 얻은 소중한 유산이다.

바흐 건반음악의 연주는 두 손의 훈련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어떤 악기로 연주하라고 특별히 적어놓지 않은 악보 때문에 연주자들은 고문서를 뒤져야 한다. 탄탄한 화성법의 논리로 중무장하고 어떻게 이 악보를 해석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기술적인 작업이 아니고 창조적인 작업이 된다.

▼‘설계경기’ 단어사용 어불성설 ▼

작곡과 연주는 무작위의 음을 기계적으로 배열하고 재생하는 것이 아니다. 어쭙잖은 감정의 분비도, 치기 어린 기교의 과시도 아니다. 분석과 상상력에 기초한 소리의 조탁이다. 피아니스트의 손이 얼마나 빨리 건반 위를 돌아다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작곡가는 음악설계사가 아니고 음악연주는 경기(競技)가 아니다. 경기는 말 그대로 기술, 재주를 겨룬다. 누가 더 빨리 결승점에 들어왔나, 어느 팀이 골을 더 많이 넣었나를 계산할 뿐이다. 누가 더 창의력이 뛰어난가에 초점을 맞춰 결과를 가늠하지 않는다.

독일 의회 의사당을 거대한 천으로 뒤덮는 이벤트를 만들었을 때 미술가가 한 일은 설계였다. 우리는 이 규정짓기 어려운 작업을 기꺼이 미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주인공인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미술설계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훌륭한 미술작품을 뽑아서 상을 준다고 해서 미술경기대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등에 번호판을 단 미술선수들이 조각 작품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을 완성하는 데 만만찮은 기술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가치를 판단하는 잣대는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건축가 대신 건축설계사라는 단어가 횡행하고 건축설계경기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이와 건강과 가족관계를 이야기하면 몇 년 동안 얼마를 내고 얼마를 돌려받을지를 계산해주는 보험설계사는 존재한다. 그러나 건축가는 건축설계사가 아니다. 건축은 대지를 제시하면 원하는 면적대로 건물을 만들어주는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을 내걸고 거기에 맞는 건축설계안을 공모하는 것을 영어로는 ‘컴피티션(competition)’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옮긴다면 올림픽에서는 경기가 되지만 건축에서는 단연 ‘현상 설계 공모전’이다.

우선 이것은 형식을 갖춰 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공모전’이다. 이 공모전은 지을 건물의 설계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것이므로 ‘설계 공모전’이다. 상금이 되었든, 상장이 되었든 보상을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현상 설계 공모전’이다. 이것은 이 땅에서 신문이 발행되기 시작한 이후 일관되게 사용해 온 단어이기도 하다.

일본의 건축잡지와 함께 나돌아다니던 설계경기라는 괴상한 단어가 공식 문서의 표지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관청에서 발주하는 공모전도 아예 설계경기로 불리기 시작했다.

건축설계는 경기의 대상이 아니다. 누가 주어진 땅에 한 뼘이라도 더 많은 면적의 건물을 구겨 넣는가를 겨루는 작업이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허가내고 건물을 지어 더 많은 투자가치를 확보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건축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환경을 도시에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창의력 요구…‘공모전’으로 불러야 ▼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고들 이야기한다. 건축가는 도시라는 악보에 음악을 쓴다. 거리라는 화판에 건축의 그림을 그린다. 역사의식으로 무장하고, 상상력이라는 도구로 이 도시를 걸어다닐 다음 세대의 마음을 담을 그릇을 만든다. 건축은 그런 작업이다. 건축설계사가 아닌 건축가가, 건축설계 경기가 아닌 건축설계 공모전이 이 사회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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