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황창배가 그립다 …화단의 테러리스트

  • 입력 2003년 4월 15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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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기 맞아 회고전

황.창.배.

잊을 만 하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불쑥불쑥 그 이름 석자와 만났다. 그 때마다 놀랐던 것은 산 자들이 추억하는 망자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정말 좋은 한국 작가를 잃었다는 아쉬움이 매번 진정(眞情)이었다는 것이었다.

황창배(1947∼2001)는 삼십대부터 이미 ‘황창배 신드롬’이란 신조어를 낳으면서 ‘미술 애호가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작가’ ‘한국 화단의 이단’ ‘낡아 빠진 동양화를 개혁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걸출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생전에, 스타의 삶에 걸맞게 많은 화제를 뿌리며 살았다.

젊은 날 연속 4회로 국전에 특선 2번, 문공부장관 상, 대통령 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호암미술관 초대전등 영예를 안았지만 늘 신인처럼 변화를 갈구해 현대 회화의 전위로 불렸다. 죽기 10여년 전 이화여대 교수를 돌연 박차고 충북 산골짜기에 칩거하면서 고독과 소외와 외로움으로 점철한 그의 삶은 오로지 ‘나만의 그림’을 찾겠다는 전투였다. 그는 그렇게 아무도 권하지 않은 전쟁터에서 홀로 싸우다 쉰 다섯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 파격과 일탈… 유작 50여점 선봬

그러나, 그의 유작전이 마련된 서울 관훈동 동덕아트 갤러리(5월4일까지. 02-732-6458∼9)에 선 보인 50여점의 유작들을 돌아 보면서 머리 속에 스친 생각은 이런 무거움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토록 제 맘대로일 수 있으며 어떻게 이토록 흥겨울 수 있는가, 일찍 갔다는 애통함보다 원없이 살았으리라는 부러움이 앞섰다. 게다가 무릇, 파격이니 일탈이니 초월은 현실을 벗어나 세상과 등지기 십상일진대, 그는 무법(無法)과 자유를 휘두르면서도 현실에서 그토록 사랑받았으니 얼마나 행복한 작가인가.

그는 때로 낙서처럼 즉물적으로, 때로 해학적인 치기가 가득하게, 캔버스를 세상을 마음대로 유희하며 조롱하고 있었다. 인체를 로봇처럼 구현해 놓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내장을 드러 낸 물고기도 있다. 장닭을 그려놓고 울음 소리를 곡고댁(哭高宅) 한자로 표기한 것은 ‘부잣집을 곡한다’는 냉소다. 재료도 수묵과 채색과 종이는 기본이요, 마대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퍼그먼트, 오일, 파스텔, 흑연 가루 등이 무차별적으로 동원되었다. 이것들을 덕지덕지 발라 올린 것들이 있는가 하면 마음대로 휘갈겨놓은 것도 있다. 작가는 생전에 “너무 정제된 그림은 재미가 없고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을 듯 말 듯 하는 것이 재미가 있다”고 했다던가.

# “정제된 그림은 재미가 없어”

그저 내키는대로 오로지 ‘화흥’(畵興)만으로 그렸다는 그의 그림들을 보면 순간, 몸이 붕 뜨는 듯한 가벼움과 쾌감이 느껴진다. 아하! 세상이란 삶이란, 저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구나, 슬그머니 웃음까지 터져 나온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작가의 혼과 정신이라는 에너지와 만나면 이런 감정은 180도 달라진다. 한마디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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