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국인 이해의 개념틀'

  • 입력 2003년 4월 11일 16시 56분


코멘트
‘풍류’ 등 한국인에게 두드러지는 문화적 개념은 유입된 이론이 아닌 ‘토착심리학’의 범주 내에서 적합한 심리학적 분석틀을 찾을 수 있다. 김홍도의 ‘포의풍류(布依風流)’.동아일보 자료사진
‘풍류’ 등 한국인에게 두드러지는 문화적 개념은 유입된 이론이 아닌 ‘토착심리학’의 범주 내에서 적합한 심리학적 분석틀을 찾을 수 있다. 김홍도의 ‘포의풍류(布依風流)’.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인 이해의 개념틀/조긍호 지음/665쪽 2만4000원 나남출판

서구의 이론이 우리의 사회문화적 현실과 한국인의 심리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 대해 한국의 인문 사회과학도들은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인문 사회과학계에서 흔히 말하는 토착이론 또는 자생적 이론의 정립이 아직도 유아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이유를 심층 해부해 보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서구 주도로 발달된 심리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 이론이 보편주의를 전제로 구성된 것이며 바로 이런 서구의 이론이 우리의 머리를 선점해 있다는 것과 관련된다. 이런 상황에서 탈보편주의, 즉 특수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적 이론의 개발은 방어적이거나 소극성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생적 이론이 이론으로서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서구 이론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한 가지 방법은 서구인이 아닌 바로 우리 삶의 역사와 문화에 기반을 둔 이론을 구성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학문 패러다임에 반하는 ‘대항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전략과 관계된다.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이 지적한 것처럼 학문적 정통성은 역사성에 기반을 둔다. 심리학의 경우 ‘한국적’ 이론으로 간주될 수 있는 자생적 가설이나 명제들이 광복 이후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출판돼 왔다. 그럼에도 정작 일반 학계는 물론 심리학자들조차 심리학 분야에 우리의 자생적 이론은 아직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파편화된 형태의 자생이론들은 그동안 많이 제시돼 왔으나 이들을 묶어 주는 이론체계서나 이론발달의 역사서 형태의 저서가 없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 완성도 면에서는 아직 정교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제시된 다양한 생각과 자생이론들을 의미 있는 역사체계 및 개념발달 체계로 정리해 놓으면 거기서 한국적 자생심리학의 정체성 실체성 역사성이 공식화된다.

조긍호 교수(서강대)의 이번 저서는 바로 이런 자생적 이론의 정립요건을 실천적으로 정형화한 기념비적 사건이다. 제1요건과 관련해서 저자는 한국인 심리의 개념틀을 우리의 삶 속에 체화된 유교문화와 유학적 사상에서 끌어내고 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그동안 유학의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유학심리학’이라는 개념과 이론을 창출해 냈고 그 연구를 담은 저서 ‘유학심리학’으로 제44회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기도 했다.

제2요건과 관련해서 저자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의 심리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된 논문과 저서들을 발표 연대별 내용영역별 저자별로 정리하여 개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발표 논문 및 저서들을 자신이 개발한 유학심리학의 이론체계 속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의 심리와 행동을 설명하는 개념과 이론들이 기존의 서구 심리학에서의 그것들과 어떻게 대비되는가를 비교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곁들이고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저자는 한국인 심리이해의 개념과 이론들이 서구적 좌표상에서 어떻게 정의되는가를 독자들에게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본 저서가 지금까지 이뤄진 한국인의 심리 관련 연구물과 이론들을 총망라해서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갖는 총괄서로서의 장점은 역으로 지나치게 많은 개념을 한 권의 책에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문화적 개념과 심리적 개념을 접합시키는 과정에서 그 이음 과정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부분도 발견된다.

하지만 기존에 발표된 부분별 논문에서는 이미 상세한 설명이 이뤄져 있다. 더 깊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는 저자의 개별 논문을 접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 저서는 자생적인 한국인의 심리 연구와 이론을 공식적 학문체계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한 심리학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상진 중앙대 교수·심리학 choi@cau.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