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도 틈만 나면 자는 것을 보고 동료들은 저를 ‘잠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밤에 별도로 개인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낮에 자 두는 수밖에 없죠.”
파리에서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자리를 포기하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춤 인생을 시작한 그의 ‘강한 의지’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이제 한 고비 넘겼으니 예전보다 조금 여유가 생기겠지요. 군무 무용수들은 대부분 10대 중후반이지만 모두 탄탄한 기본기를 가지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몸이 만들어진 상태인 저로서는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연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두 나라 무용수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연기력’과 ‘감정표현력’을 들었다.
“한국에서는 테크닉 면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높이 뛰고 많이 회전을 하고 여자무용수를 가뿐히 들면 잘했다고 칭찬하지요. 파리에 와서 보니 그것은 단지 기본일 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배역을 소화해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기력과 감정표현이지요. 이런 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양인에게 파리 정상 무대의 벽은 높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무용수 150여 명 중 동양인은 그와 일본 출신의 여자무용수뿐. 일본 무용수가 파리오페라학교 출신임을 고려한다면 그는 가장 힘든 처지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과도한 연습을 하다 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있을수록 세계 정상의 무대에서 인정받으려는 그의 집념은 더욱 강해졌다.
“관객으로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공연을 보면 무용수들 한 명 한 명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공연을 본 뒤 질투심에 불타 잠 못 이룬 밤도 많이 있었지요. 그 질투심이 바로 제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그는 작년 ‘돈키호테’ 공연 때 대타로 집시 역의 솔로를 맡았다. 하루 반 밖에 연습시간이 없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강렬한 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았고 데미 솔리스트가 되기 위한 승급 시험도 통과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마흔살까지 춤을 출 겁니다. 그 때까지 파리오페라단에 있을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제 춤의 세계를 펼치며 끝까지 춤을 추는 것이 계획입니다.”
세계 무대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그는 “그 동안 해외 진출을 시도한 사람이 없고 시도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하면 된다”며 자신감에 찬 조언을 남겼다.
그는 21일부터 4월5일까지 일본 순회공연에 참가한다. ‘라 바야데어’ 중 인디언 북춤 솔로를 맡아 박진감 넘치는 춤을 선보인다. 7월 17∼20일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 참가할 예정.
파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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