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지킴이]"의사들 진료량 줄여야 분쟁 감소"

  • 입력 2003년 3월 16일 18시 00분


코멘트
의료전문변호사 1세대인 최재천(왼쪽) 신현호 변호사가 한 환자의 X레이 사진을 보면서 판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의료전문변호사 1세대인 최재천(왼쪽) 신현호 변호사가 한 환자의 X레이 사진을 보면서 판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1980년대만 해도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가 의사와 싸워 소송에서 승소할 확률은 10∼20%대에 불과했다. 환자 가족들은 의사를 원망하며 장례를 치렀다. 병원에서 되레 병을 얻어 귀가하면서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반면 법보다는 힘에 의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부는 병원측에 과실이 없는데도 복도에서 넉장거리를 하며 난장판을 벌였고 어떤 사람은 폭력배를 고용해서 의사를 협박하기도 했다.

신현호(45) 최재천(40) 두 변호사는 이렇게 무법천지(無法天地)였던 의료 분쟁의 영역을 법의 테두리 안에 밀어넣는 데 기여한 ‘의료 전문 변호사 1세대’이다. 이들은 환자의 승소율을 60%대까지 끌어올렸다.

이들은 90년대 초 법률과 의학을 같이 공부하면서 의료 분쟁 분야를 개척한 ‘반(半) 의사, 반 율사’다. 당시 의료소송은 기간이 2∼3년이 걸리는 데다 품이 많이 들고 승소율이 낮아 다른 변호사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때였다.

두 변호사는 국내 최초 판례의 행진을 이어가면서 ‘판례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의료계에서는 이 두 사람이 의사들이 의료분쟁을 피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의사의 가이드라인을 만듦으로써 결국 환자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려대 법대를 나온 신 변호사(사시 26회)는 90년 소송에서 환자 가족이 아닌 환자 본인에 대해 수술 동의를 받지 않았을 때는 ‘의사의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판례를 끌어내 기존의 의료 관행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또 90년대 초 잇단 소송을 통해 환자측에서 적극적으로 의사의 잘못을 입증하지 않아도 재판에서 의사의 과실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과실 입증 완화론’를 국내에 뿌리내리도록 했다.

93, 94년 병원에서 아기가 뒤바뀐 사건 6건의 소송을 맡아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유전자 감식법을 통해 친부모를 찾아줬다.

조선대 법대 출신의 최 변호사(사시 29회)는 93년 국내 최초의 의료전문 법무법인 한강을 설립했다.

그는 98년 감기약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투약을 강행한 의사의 책임을 인정하게 하는 판결을 받아냈다. 99년에는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린 환자를 대리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정부와 일진일퇴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최 변호사는 “의료사고로 숨진 선배 부인의 소송을 맡으면서 미개척 분야인 의료 분쟁에 관심을 갖고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개척자로서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점이 더 많다.

신 변호사는 목소리가 낮고 조용한 반면 최 변호사는 목소리가 시원시원하고 웅변가 스타일이다.

신 변호사에게선 학자의 풍모가 엿보인다. 93년부터 의대 교수, 법조인 등 10여명과 ‘의료법학포럼’을 조직해서 의료법에 대해 공부하면서 국내에 의료법학이 뿌리내리도록 했다. 그는 의료 문제 전반에 걸쳐 전문가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거의 매일 대학교나 의료단체 등에서 각종 주제에 대해 강의한다. 매년 각종 학술지에 5∼10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최 변호사는 활동가형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교육위원장을 역임했고 청년전문가연합회라는 단체의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신 변호사는 주요 병원들의 고문직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는 현재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20여개 병원의 고문 변호사로 있다. 그렇지만 환자측 변호를 맡는 경우가 병의원쪽 변호를 맡는 경우보다 6 대 4 정도로 더 많다.

최 변호사는 환자측 변호를 맡는 경우가 95 대 5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아 ‘환자편 의료 전문 변호사’로 불린다.

그는 “의사에게 감정이 있어 환자 소송을 많이 맡는 것은 아니다”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의사를 형사고소해서 분쟁을 해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가 1분에 한 명을 진료해야 하는 현실이 고쳐져야 의료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

두 사람은 매년 각각 100여건 정도의 소송을 맡고 있으며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측 소송대리인으로 맞붙는 경우가 30∼40건 정도 된다. 국내 의료 소송의 20% 정도를 이들이 양분하고 있는 것이다.

“병의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환자측이 이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매사를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태도 역시 온당치 않습니다.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제한돼 있습니다.”(신 변호사)

“요즘 정상적인 절차보다는 조직폭력배나 브로커, 사이비 시민단체에 의존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비용이 훨씬 더 들고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피해를 입은 환자 측이 충분한 배상액이나 위자료를 받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법 테두리를 벗어나면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최 변호사)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의료사고 의심때 행동요령▼

신현호, 최재천 두 변호사는 의료사고를 당했을 때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두 변호사가 전하는 ‘의료사고 의심 시 행동요령’.

①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부상이 생겼으면 곧바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라.

②억울할수록 냉정해야 하며 진료기록을 복사하는 등 증거를 남겨야 한다.

③폭력배를 동원해 의사를 협박하면 나중에 자신이 폭력배의 볼모가 된다.

④사이비 시민단체를 조심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환자의 편이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병의원에 대한 악감정을 부추긴다. 결국 정상적으로 법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돈과 노력이 훨씬 더 들게 된다.

⑤억울하다고 무조건 송사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유전 질환을 갖고 태어난 경우나 예견을 못했더라도 병에 대해 치료할 방법이 없을 때에는 이길 가능성이 적다. 또 암의 경우 오진이 명백해도 1500만원 이상 받기 힘들다. 정신적 위자료는 5000만원 이상을 받기 힘들다.

⑥의사의 과실이 거의 확실한데도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렵다면 소비자보호원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이곳의 조정은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의료 소송은 변호사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3년이 걸리며 착수금이 500만원 내외, 승소시 성공 사례금은 5∼20% 정도이다. 따라서 소송가액이 1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소비자보호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⑦절대 감정을 폭발해서는 안 된다. 의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역고소를 당해 억울한 합의가 이뤄지기도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