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일부 언론단체 내세워 비판新聞 재갈 물리나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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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21일 “신문고시(告示)를 개정해 신문시장에 직접 개입하겠다”고 선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공정위의 방침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문시장을 인위적으로 왜곡시키고 나아가 언론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책=신문고시는 1997년 1월 처음 만들어져 운영되다가 현 정부의 규제개혁 방침에 따라 1999년 1월 폐지됐다. 그러나 2001년 언론사에 대한 대대적인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위 부당내부거래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공정위가 부활을 추진했다.

당시 언론학자들과 야당 등은 ‘언론자유 침해’와 ‘신문의 하향 평준화’를 걱정해 신문고시 부활을 반대했으나 공정위가 부활을 강행해 2001년 7월부터 다시 시행됐다.

신문고시는 규제개혁위원회에서도 논란이 됐으나 ‘자율규제’라는 전제 아래 통과됐다. 당시 규개위 위원을 지낸 김일섭(金一燮) 이화여대 경영부총장은 “신문고시가 규개위에서 통과된 것은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했기 때문”이라면서 “공정위가 자의적으로 이를 수정할 수 없도록 부칙이 아닌 본문 11조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신문고시 11조는 ‘신문고시를 집행함에 있어서 사업자단체(신문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이 고시의 내용에 저촉되지 않는 공정경쟁규약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그 사업자단체가 그 규약을 우선적으로 적용해 처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문협회는 이 조항을 토대로 2001년 10월 ‘신문공정경쟁규약’을 제출했고 공정위는 전원회의에서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신문고시 시행 1년반여 만에 자율규제 원칙을 폐기하고 타율규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것.

▽타율규제의 진의(眞意)는 뭔가=공정위는 타율규제로 전환하는 명분으로 “자전거 등 고가(高價) 경품 제공이 만연하고 있고 신문협회의 자율규제가 거의 실효성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정위의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우선 신문협회는 공정경쟁규약을 토대로 불공정 행위를 적발해 1997년부터 작년말까지 신문사별로 수천만∼수십억원의 위약금을 부과했다. 또 동아일보는 지난달 29일 신문협회 공정거래위원회에 발행인 명의로 공정거래 준수 서약서를 제출했고 조선일보는 이달 12일 1면 사고(社告)를 통해 자전거 등 고가 경품제공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金寓龍·신문방송학) 교수는 “주요 신문사들이 자율적으로 공정경쟁 질서 확립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권력이 직접 개입하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개정하겠다는 진짜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는 해석이 많다. 특히 공정위가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공조(共助)해 신문시장을 감시하겠다고 밝힌 점은 주목된다.

공정위가 신문업계의 전체 이해를 대변하는 신문협회를 제쳐두고 특정 신문사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부 언론관련 단체와 공조를 하겠다는 것은 대형 신문사들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시장질서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대구대 전용덕(田溶德·경제무역학부) 교수는 “정부가 신문시장에 직접 개입하면 경쟁이 촉진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오히려 억제된다”면서 “이는 명백히 시장경제 체제에 반(反)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신문고시 부활 자체가 경쟁력이 약한 신문사들의 주장을 ‘공익(公益)’으로 포장해 경쟁력이 강한 신문사들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우룡 교수는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언론시장에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신문시장의 자율규제 원칙이 무너지더라도 정부가 아닌 독자나 언론전문가가 감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언론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며 “사상의 자유시장 기능이 무너지면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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