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 성공학']말솜씨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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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30대 초반의 이 대리. 요즘 새로 온 팀장한테 찍혀서 심하게 마음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처음에 그는 왜 자신이 표적이 됐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술자리에서 불평을 터뜨리다가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동료의 입을 통해 그 원인을 알게 됐다.

그는 딱히 수다스러운 것도 아닌데, 이상스러울만치 장황하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경우, 대개는 무슨 얘기든지 핵심이 흐려지기 쉬웠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일도 많았다. 특히 회의시간에 자기가 맡은 일을 설명할 때면 더욱 그런 버릇이 두드러졌다.

일에 대한 준비도 돼 있고 노력한 흔적도 있건만, 장황하고 지루한 설명 때문에 누구한테도 깊은 확신을 주지 못했다. 동료들이야 그렇다 쳐도 자칫 예리한 상사를 만났다간 무사하기 힘든 게 당연했다.

다행히 그동안 함께 일한 팀장은 성격도 느긋하고 포용력도 있는 타입이라 그럭저럭 넘어갔었다. 유머감각도 있어서 뭐라고 힐책하는 대신 어느 날은 모래시계를 가져와 “순전히 너 때문에 쓰는 거니까 시간 엄수해서 핵심만 말해라”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버릇을 고치지 못했으니 문제가 있는 타입인 건 분명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 문제가 뭔지 잘 모르고 있다고 하는 표현이 옳았다. 더욱이 새로 온 팀장은 전임자와는 사람이 사뭇 달랐다. 거의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게다가 무슨 얘기든 ‘분명하고 간결하게 핵심만 말할 것’이 그의 첫 번째 주문이었다. 쓸데없이 말만 많은 위인치고 일 제대로 하는 거 못 봤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이 대리는 제대로 찍히고 만 셈이었다. 억울한 건 그가 정말 일을 못하는 건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런데도 말솜씨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니 마음고생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말솜씨는 타고난다고 생각해 고칠 생각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분명하고 간결한 표현으로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필수적인 능력의 하나이다. 물론 그런 능력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다. 많은 독서에서 비롯된 어휘력과 정확한 의견개진을 위한 나름대로의 훈련과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도 “난 처음부터 말솜씨가 없는걸. 그런 걸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이야” 하고 포기한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도 없다. 인생의 모든 과정을 하나의 훈련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생각 역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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