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세의 나이로 ‘파르티잔 리뷰’에 ‘헉핀이여, 다시 뗏목으로 돌아와 다오’라는 도발적인 글을 써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피들러는, 1960년 ‘미국문학에 나타난 사랑과 죽음’이라는 유명한 비평서를 출간함으로써 세계문단과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위 두 논저에서 피들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인종간의 우정과 사랑이 어떻게 미국작가들의 상상력을 통해 미국문학에 나타나고 있는가를 놀랄 만한 통찰로 탐색하고 있다.
1960년대 초, 피들러는 전자매체의 등장과 더불어 모더니즘적인 엘리트문화 시대가 끝나고 대중문화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며, 난해한 모더니즘 소설의 죽음을 선언했다. 후에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소설의 죽음’은 당시 많은 작가들과 비평가들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의 선지자적 혜안은 오늘날 정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직되고 보수적인 학계를 싫어했던 피들러는 ‘플레이보이’지에 유명한 포스트모던 평론 ‘경계를 넘고, 간극을 메우며’를 발표해 주의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지난 겨울, 자택으로찾아간 필자에게 그는, “젊은 비평가들이 이제는 나를 보수주의자라고 비난해”라며 껄껄 웃었다. 자신의 자녀들을 유색인들과 결혼시키고, 한국인 아이까지 손녀로 입양한 그는 그렇게도 기다렸던 ‘미국문학에 나타난 사랑과 죽음’의 한국어 출간을 불과 한 달 앞두고 타계했다.
김성곤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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