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보이체크' 역동적 몸짓 연기 '연출의 파격'

  • 입력 2003년 1월 21일 19시 04분


코멘트
연극 ‘보이체크’ 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연극 ‘보이체크’ 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객석으로 달려들 듯이 기울어진 무대 위에서 무거운 롱코트를 입고 탱고 리듬에 맞춰 추는 강렬한 군무. 러시아 연출가 유리 부드소프의 연극 ‘보이체크’는 축제와 함께 시작된다.

그러나 객석의 시선에 맞춰 경사가 진 무대는 울퉁불퉁 쇠가 박히고 불규칙하게 구멍 난 바닥, 빛이 쏟아지는 두 개의 통로, 한쪽에 세워진 철제 계단까지 어느 한 구석 빼놓지 않고 관객의 눈으로 쏟아져 들어와 관객들이 편안히 무대를 관조할 틈을 주지 않는다.

도덕을 설교하는 중대장에게 “돈 없는 우리는 도덕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며 힘없이 변명하는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 그가 가진 자들의 유혹에 타락해 가는 연인 마리아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격리시키는 ‘살인’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갈 길도 역시 죽음이었다. 연극 ‘보이체크’가 보여주는 현실은 이렇게 잔인하다.

생존에 필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기억하는 영리한 인간이 정보의 과도한 유입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일차적으로 ‘불안’이다. 관객들은 부조리한 사회와 위태로운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고통스럽게 바라봐야 한다. 적어도 ‘현명한’ 관객이라면 “작품 속 인물들에게 자신을 대입시켜 보면서 사회 전체의 구조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라”는 부드소프의 잔인한 요구를 피하고 싶겠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부드소프의 ‘마력’이다.

원작은 24살에 요절한 독일 극작가 게오르그 뷔히너(1813∼1837)의 미완성 희곡 ‘보이체크’(1836).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부조리에 짓밟힌 소시민의 비극을 그려낸 이 희곡은 인간과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력 있는 상징성 때문에 연극, 무용, 오페라 등 여러 장르에서 다양하게 해석돼 왔다.

러시아의 주목받는 연출가 부드소프와 박지일, 김호정, 장민호, 윤주상, 장현성, 남명렬, 이대연 등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기자들이 만나 이 작품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부드소프는 무엇보다 배우, 무대, 음악, 의상 등 연극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 대사에 의존했던 작가의 연극 시대가 지나 연출가의 연극 시대가 왔다고 주장하는 그의 연극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경사진 무대 위에서 춤추고 넘어지고 구르면서 지하와 지면과 계단으로 구성된 다층적 무대 전체를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연기자들의 ‘몸짓’이다. 고정된 무대는 연기자들의 몸짓에 의해 술집, 침실, 병원, 숲, 지붕으로 변신한다.

평면적 무대에서는 눈에 거스릴 만큼 과한 몸짓이지만 다층적 구도로 확장된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연기자들의 몸짓은 오히려 그 공간을 채우기에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런 무대와 몸짓의 충만한 활용은 한국 연기자들에게 아직 익숙치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2월2일까지. 평일 7시반, 토 4시 7시반, 일 4시(월 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2만∼3만원. 02-580-1300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