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파워'展 "전기가 흐를때 짜릿한 감동도…"

  • 입력 2003년 1월 14일 19시 13분


코멘트
홍지연의 ‘오아시스’. 과장된 꽃문양과 함께 어우러지는 싸구려 가짜꽃 뒤로 번뜩이는 조명등은 얼키고 설킨 사람들 사이에 부풀려진 인간관계를 은유하고 있다.
홍지연의 ‘오아시스’. 과장된 꽃문양과 함께 어우러지는 싸구려 가짜꽃 뒤로 번뜩이는 조명등은 얼키고 설킨 사람들 사이에 부풀려진 인간관계를 은유하고 있다.
‘과학은 옛 노래를 들을 때 우리가 왜 눈물을 흘리는 지 말하지 못한다. 물론 눈물에 대해서는 압축 팽창하는 음파가 우리 귀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눈물선에서 짭짤한 액체를 분비하는 순간까지,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원리적으로는 상세히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 수반되는 육체적 기쁨과 슬픔, 푸름과 붉음, 쓴맛과 단맛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못한다. 미추, 선악, 신과 영원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의 이 말처럼 과학과 감성의 행복한 만남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의 단서를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전시가 열린다.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서울 서초동 한전프라자 갤러리에서 17일∼2월16일까지 열리는 ‘일렉트릭 파워’전. 이번 전시에는 급속한 산업발전의 동력이었던 전기 에너지와 예술적 사유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행복한 만남이 다양한 시각적 표현으로 등장한다.

김준의 영상설치작업인 ‘장미클럽’. 검은 양복을 입고 어깨에 장미꽃 문신을 새겨놓은 남자들의 이미지는 도시 화이트컬러들의 일상과 이면에 숨겨진 야성미와 장난기를 동시에 보여준다.(왼쪽사진)
백남준의 ‘TV 첼로’. 그의 작품은 단순히 미디어작품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으로서의 예술의 영역에 대한 발언이 담겨있다.

전기가 미술에 응용된 것은 1920년대부터. ‘빛과 움직이는 물체가 작품을 창조한다’는 이론에 기초해 1960년대에 절정에 이른 키네틱 아트(Kinetic Art)나 네온, 형광등같은 인공의 빛을 이용한 라이트 아트(Light Art)가 대표적이며 이후 비디오 컴퓨터와 홀로그램 등으로 폭이 넓어졌다.

한국에서 테크놀로지 아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 백남준 등이 국내외에서 비디오 예술을 내놨지만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대중적 관심사로 부상한 것은 아직 역사가 짧다.

물론 컬러 TV와 함께 비디오 카메라가 보급된 지 불과 20여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90년대 들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미디어 아트는 ‘한국적 스피드’를 실감케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금수씨는 “서구의 경우 백열전구 발명과 함께 생활과 예술에서 전기를 활용한 도구나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됐고 그들의 삶과 예술을 변화시킨 원동력으로서 전기를 자연스레 인정하는 분위기라면 우리는 갑작스런 현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뭔가를 잃고 곧바로 하이테크놀러지로 빠져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테크놀로지나 미디어아트의 방향과 속도를 모두 생략하고 허상만 부풀려지는 상황에서 하드웨어냐 소프트웨어냐에 머물지 않고 전기로 말미암은 현실과 시각 이미지 생산의 변화를 챙겨보자는 것이 이번 전시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씨의 말대로 전시에는 단순한 조명과 전동기를 이용한 작품부터 복잡한 컴퓨터 영상과 가상 현실을 연출하는 작품까지 광범위하게 포진한다.

나무나 철판, 합성수지 등 친근한 소재들로 만든 인물 조각이 관객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유쾌한 날’을 선보인 김주호의 작품은 차게 느껴질 수 있는 테크놀로지 아트를 따뜻하게 다가오도록 한다.

안광준은 스크린에 레이저빔을 투사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만들어 관람객이 입체안경으로 가상 현실을 체험하도록 했다.

안상진은 사이보그처럼 움직이는 로봇이 큰 북과 작은 북을 차례로 연주하는 영상설치 작품을 선보여 인간의 원시적 감성과 기계적 메커니즘의 조화를 보여준다.

한편 이기일은 로봇조각을 통해 문명의 이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씁쓸함을 감성으로 전달하며 이용백은 양복을 입고 바닷 속을 걸어가는 샐러리맨을 영상기법으로 보여줘 질주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표현하고 있다. 백남준의 ‘TV첼로’도 선보인다. 02-2055-1192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