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타계한 유영국화백, 인습 거부한 한국추상미술 선구자

  • 입력 2002년 11월 11일 23시 11분


유영국作 '산'
유영국作 '산'
11일 타계한 유영국(劉永國) 화백은 한국 화단이 낳은 ‘추상미술의 거목’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원로 미술 평론가 이경성(李慶成) 선생은 고인의 부음을 접한 뒤 “유 화백은 일제강점기 이미 일본 추상화가도 엄두 못 낼 일을 해낸 현대 한국 화단의 거목”이라고 추모했다.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 제2고보(현 경복고)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항해사가 되려 했으나 학력 미달로 고등 상선학교 입학이 좌절되자 35년 도쿄 문화학원 유화과에 들어가 화가의 길을 걸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도쿄 유학 당시부터 산 나무 길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추상의 외길을 걸어왔다. 기하학적인 엄격한 조형성, 나이프로 두텁고 균질하게 바른 강렬한 색면들, 그 속에 우람하게 솟은 ‘산’의 모티프는 오랫동안 그의 상징처럼 이야기돼 왔다. 곁가지와 수사를 버리고 본질만 남은 화면은 평소 말수가 적은 침묵의 화가였던 그의 성품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는 동시대 화가들인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처럼 ‘신화’는 남기지 않았지만 평생 고집스럽게 작업실에만 칩거했던 ‘장인’이었다. 또 자기 삶을 ‘대패질하듯 그 흔적을 깎아서’ 모더니스트답게 생활의 구태와 자유를 구속하는 인습을 가차없이 버렸던 화가로 평가된다.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도 작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2년여만에 그만뒀다.

난로를 피워도 손이 시려운 서울 약수동 적산가옥에서 몇시간씩 선 채로 그림을 그렸던 일이 화근이 되어 골절을 앓아 말년에는 휠체어를 타고 그림을 그렸다. 큰 키에 희끗한 머리, 은근히 멋이 풍기는 옷차림에 꾸밈없는 경상도 억양의 소탈한 그였지만 내면에는 직업 화가로서 평생을 고집스럽게 버텨 온 고집이 숨어 있었다.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은 1000여점. 한창 때는 직장에 나가듯 하루 8시간씩 작업했으며 말년에도 아침 저녁 한 시간씩 붓을 놓지 않았다.

1975년 첫 개인전을 계기로 유 화백과 인연을 맺은 갤러리 현대 박명자 대표는 “60년대 초 반도화랑 시절 키 크고 잘 생긴 미남 화백 4명이 있었는데 김환기 박수근 이대원과 함께 유 화백이 그 중 한 분이었다”며 “유 화백은 처음부터 추상을 시작한 보기 드문 화가였다”고 회고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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