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焚 券(분권)

  • 입력 2002년 11월 5일 18시 28분


焚-태울 분券-문서 권 盜-훔칠 도

徒-헛될 도脚-다리 각 蕩-클 탕

鷄鳴狗盜(계명구도)의 주인공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의 孟嘗君(맹상군)이 3000명의 食客(식객)을 두고 있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의 두뇌집단(think tank)인 셈. 조금이라도 특이한 재능만 있으면 ‘過去不問’(과거불문)하고 받아들이고는 衣食住(의식주), 심지어는 용돈까지 대주었다. 자연히 빨주노초 별 희한한 인간群像(군상)들이 다 모였다. 그 중 鷄鳴狗盜는 ‘좀도둑’이 빛을 발했던 케이스라 하겠다.

하루는 馮驩(풍환)이라는 거지가 찾아왔다. 별 재주도 없어 보였지만 하도 초라하고 불쌍해서 3등 宿所(숙소)에 배치했다. 그 날밤이었다. 이 거지가 지팡이로 벽을 ‘쾅쾅!’ 치면서 한 바탕 소란을 피워댔다. ‘방이 누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孟嘗君은 하는 수 없이 2등 숙소로 올려주었다. 그러자 이튿날 아침에는 밥상을 내동댕이치는 것이 아닌가.‘고기반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들어주자 이번에는 또 外出할 때 수레가 없다고 투덜댔다. 그는 정말 괴짜였다.

당시 孟嘗君은 薛(설·현재 山東省 동남지방)에 1만호의 食邑(식읍)을 가지고 있었는데 3000 食客을 扶養(부양)하기 위해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아 빚독촉꾼을 보내게 되었다. 누구를 보낼까 궁리하다 1년간 無爲徒食(무위도식)으로 일관했던 馮驩을 보내기로 했다. 이 자라면 틀림없이 빚을 받아올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馮驩은 薛에 도착하던 날 밤 주민들을 불러모아 대대적으로 잔치를 벌였다. 소를 잡고 술을 대접하여 債務者(채무자)들을 배불리 먹이고 장작더미를 쌓아 불을 지른 다음 말했다.

“다들 契約書(계약서)를 여기에다 쳐 넣어라!”(焚券)

주민들은 뜻하지 않은 橫財(횡재)에 환호성을 질렀다. 다들 孟嘗君이 시킨 것으로 알고 그의 人品에 감격해 마지않았다. “孟嘗君 만세!”가 하늘을 진동했다. 하지만 孟嘗君은 기가 막혔다.

馮驩이 말했다. “아닙니다.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 卿(경)께서는 단지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卿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뚫어드리지요.”

이렇게 해서 후에 馮驩은 失脚(실각)했던 孟嘗君을 더 높은 職位(직위)로 復職(복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일화는 돈보다 德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이 때부터 焚券은 ‘빚을 蕩減(탕감)한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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