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책,책'에 책이 운다…TV프로 선정도서 베스트셀러 독식

  • 입력 2002년 11월 5일 18시 06분


출판시장의 성장에 일조했지만 출판계의 기획의욕 감퇴를 불러왔다는 평을 듣고 있는 MBC ‘느낌표’.

출판시장의 성장에 일조했지만 출판계의 기획의욕 감퇴를 불러왔다는 평을 듣고 있는 MBC ‘느낌표’.

MBC TV 연예오락 프로그램 ‘느낌표’(토 오후 9시 45분)의 책 소개 코너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이하 ‘책, 책, 책’)가 10일로 방영 1주년을 맞는다. TV 오락 프로그램 최초로 지식과 정보의 창고인 ‘책’을 다뤄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책, 책, 책’은 방영 직후부터 매달 이 코너에서 소개하는 ‘이달의 선정도서’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독식하다시피 하면서 ‘문화 권력’으로 떠올랐다.

제작진은 “방영 시작 후 사회적으로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서점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는 등 큰 효과를 거뒀다”고 자평하지만, 출판계 내부에서는 “프로그램의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공과(功過)’를 짚어본다.

#화제도서 ‘쏠림’현상

한국출판인회의는 최근 자체 집계해온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책, 책, 책’ 선정도서를 제외했다. 올해 들어 ‘베스트 10’목록 중 최대 7개 도서가 ‘책, 책, 책’ 선정도서였고, 최소 3∼4종의 책이 베스트셀러 1위부터 상위권을 점해 베스트셀러 목록 발표가 의미를 잃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지난해에 비해 올해 전체 출판시장의 매출은 20% 이상 성장했으나 ‘느낌표’ 도서를 제외한 일반 기획물 상위 베스트셀러의 판매량은 줄어들어 기획만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기는 오히려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전체 책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그 절반 이상을 ‘선정도서’ 가 독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베스트셀러 목록 중 ‘책, 책, 책’ 선정도서를 제외한 책들은 이 코너가 없었다면 훨씬 큰 반응을 얻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인회의 전광호 사무국장은 “참신한 기획만으로는 베스트셀러에 진입시키기 어려워져 출판인들의 기획 의욕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선정도서의 면면이 나타내듯 ‘어느 연령대나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책’ 쪽으로 출판계 기획 역량이 편중될 위험이 크다”고 염려했다.

#책이 ‘물건’인가

문화 예술계 인사들은 개그맨들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이 책을 물량화 상품화 또는 희화화 함으로써 지식과 사색에 대한 경시 풍조를 부채질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학평론가 김화영(고려대교수)은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선정된 도서가 수많은 책 속에 숨겨져 보물찾기의 대상이 되고, 놀이와 경품의 대상이 되고, 무상으로 주는 선물이 되는 등 ‘두려움도 선망도 경외심도 필요 없이 그저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는 단순한 물건이 됐다”고 비판했다.

한 출판평론가는 “순수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책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한다. 지나친 엄숙주의가 책에 대한 접근을 막는다는 생각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집약된 정신의 산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대안은 없나

출판계 관계자들은 “‘책, 책, 책’ 이 사회적으로 책에 관한 관심을 높인 초기의 순기능을 넘어 차츰 역기능이 커지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한 출판기획자는 “이 프로그램이 순수한 의도로 출발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TV 프로그램 하나에 휘둘리는 부박(浮薄)한 독서계 풍토가 오히려 문제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상위 목록을 점유해 일종의 ‘파워’가 됐음을 실감한 뒤에는 포맷을 바꾸어 1주 또는 2주마다 새로운 ‘선정도서’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내가 아는 한 국내외 어떤 매체도 동일한 책을 4∼5주 연거푸 집중 소개한다는 사례는 듣지 못했다”며 프로그램 및 도서선정에 관련하는 이들의 성찰과 방향전환을 당부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느낌표 연출 김영희PD "출판권력이라구요? 시장 키웠잖아요"

-방영 초반부터 도서시장의 움직임이 컸는데, 예상했나.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물량 자체의 움직임 보다 출판계와 서점가의 반응이 큰데 더 놀랐다.”

-프로그램이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을 자평한다면.

“도서시장이 가진 ‘파이’를 넓혔다. 특히 지방에서 군소서점이 살아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책, 책, 책’이 일종의 ‘출판 권력’이되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문화 권력에 신경쓰지 않는다.”

-앞으로도 동일한 형식을 고수할 생각인가.

“12월 말 총결산 특집을 제작한 뒤 그동안 제기된 의견을 수용, 어떤 식으로든지 변화를 모색할 생각이다.”

-‘선정도서’를 1주 또는 2주마다 바꾸는 것도 포함하는 것인가.

“4주 동안 책을 조명하던 것을 1주로 바꾸면 영향력은 4분의 1이 아니라 100분의 1로 줄어든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책, 책, 책’을 계속할 생각인가.

“매년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서 5년정도는 방영해야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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