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하동 악양 현지서 열린 제2회 토지문학제

  • 입력 2002년 10월 22일 13시 43분


제2회 토지문학제가 열린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과 주변 전경./조이영기자
제2회 토지문학제가 열린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과 주변 전경./조이영기자
시원하게 펼쳐진 악양 들녘과 섬진강을 굽어보는 지리산 자락에 작은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어둠이 사위를 감쌀 무렵, 마을의 이끼낀 푸른 돌담을 따라 불밝힌 청사초롱이 길손들의 발길을 안내한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나남출판)의 무대,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지난 주말 잔치가 열린 것이다.

'제2회 토지문학제'가 열린 평사리 최참판댁은 흥에 겨운 이들로 가득했다. 이 곳은 지난해 하동군이 34억원을 들여 3000여평의 땅에 소설 속 최참판댁을 재현해 낸 문화 공간. 윤씨부인이 호령하던 안채, 별당아씨가 거닐던 별당 앞 연못을 비롯해 사랑채와 행랑채 등이 고풍스럽다.

하동군과 하동문학회가 함께 마련한 '토지문학제'는 25년간 4만장의 원고지를 메워 5부 전16권으로 '대작'을 완성한 박경리 선생과 '토지'를 기리기 위한 행사. '시낭송의 밤' '가수 해바라기 초청 공연' 및 '토지 백일장' '퀴즈 문학아카데미' 등 다채로운 향연이 19, 20일 열렸다.

인터넷 토지문학관 회원들이 최참판댁 안채에서 포즈를 취했다,

'토지문학제'를 맞아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토지문학관'(cafe.daum.net/ttang) 회원 20여명도 최참판댁을 처음 찾았다.

"이런 산골에 최참판댁이 세워지다니 너무 신기하지요?"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그렸던 최참판댁 이미지와 딱 맞지는 않는다."

"행랑채와 별채가 더 떨어져 있을 것 같은데…."

이들은 하동문학회측의 배려로 19일 안채에서 묵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토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는 이 '토지마니아'들은 안채를 가득 채우고 끝도 없이 '토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누구를 보면 '길상'이 떠오르고, 또 누구는 '김서방댁'과 비슷하며, 누군가는 "나는 두만이네가 제일 좋더라"고 깔깔 웃는다. '토지'의 땅, 평사리 안채에서 이들이 털어놓는 '토지'의 매력은 남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2번째로 토지를 접했어요. 토지에 담긴 여러 가지 삶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힘들 때마다 토지를 잡아요. 세상 보는 눈이 남들과 같아지려고 할 때도 마찬가지지요. 제게 토지는 지렛대와도 같답니다." (한석주·42·공무원)

"토지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아요. 등장하는 선인(善人)과 악인(惡人) 모두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지닌 인물들이죠. 독특한 개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너무도 꼭 맞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예요. 살아가면서 취해야 할 '삶의 방식'을 이 사람들에게 배워요." (홍진주·22·대학생)

"1969년 '현대문학'에서 토지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봤어요.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토지를 둘러싸고 있는 한국근대사, 경상도 방언 등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고요. 등장인물들이 살아있으면서 굉장히 강해요. 희미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 없잖아요." (백승규·54·주부)

한(恨)과 수난의 역사적 현장인 지리산과 풍요를 약속하는 악양평야가 맞물린 곳에서 발원한 '토지'. 그 긴 흐름 속에 새겨진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갈망, 진실이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여 삶과 지루한 싸움을 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토지'는 지난 98년 솔출판사와의 판권계약이 완료된 뒤, 올해 1월 나남출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한 손에 잡히는 문고판 크기에 활자를 키워 가독성을 높인 2002년판 토지는 10개월간 약 50여만부가 팔려 나갔다.

하동=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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