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곬]한국조개 1700여종 수집 '민 패류연구소' 민덕기 소장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8시 25분


'민 패류연구소' 민덕기 소장이 자신의 연구소에서 희귀 조개들을 소개하고 있다. - 박영대기자
'민 패류연구소' 민덕기 소장이 자신의 연구소에서 희귀 조개들을 소개하고 있다. - 박영대기자
만약 어촌 마을 한 구석 그물에서 나온 쓰레기 더미를 열심히 뒤지거나, 해변에서 조심스럽게 모래를 한 움큼씩 주워 담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한번쯤 ‘민 패류연구소’의 민덕기(閔德基·67) 소장이 아닐지 의심해 보자.

민 소장은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한국산 조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조개 수집가다. 그가 모아 온 한국 조개는 모두 1700여 종. 한국 해안에 서식하고 있는 조개가 2500여 종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의 70%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는 97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기 소유의 건물 두 층 100평 가까운 면적에 ‘민 패류연구소’를 차려 조개 연구를 해오고 있다.

그가 생김새와 무늬에 따라 이름을 지어준 조개만도 700여종. 어려운 라틴어 학명만 갖고 있던 ‘정체 불명’의 조개들이 ‘굵은 줄 꼬마이랑 조개’ ‘옆줄 두툼 입술 작은 귀 고둥’ ‘주머니 구슬 우렁이’ 같이 듣기만 해도 정겨운 순 우리말 이름을 얻었다. 새 이름은 패류학회에 보고돼 학계에서도 정식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민 소장은 1992년부터 조개를 모으기 시작했다. 20년 동안 해 온 양계업을 정리한 뒤 소일거리 삼아 조개 수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조개가 ‘예뻐서’ 여행 도중 하나 둘 주워오는 정도였는데 갈수록 재미가 붙었다.

“새로운 조개를 찾아내는 것은 보석을 찾는 것과 비슷해요. 새 종을 발견하면 ‘노다지’를 건지는 기분이죠.” 그는 조개를 처음 모은 7, 8년 동안은 1년의 절반을 바닷가에서 보냈다.

“서양 속담에 조개를 모으는 시간은 수명에서 제외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건강에 좋다는 뜻이지요.” 그물에 걸린 물고기에는 관심이 없고 쓰레기 더미만 뒤적이는 그를 처음에 이상하게 여기던 어민들도 지금은 그를 도와 조개를 함께 찾아준다.

94년부터는 한국 조개 수집으로 돌아섰다. 한국 조개가 그동안 변변한 수집자료나 도감조차 없이 방치돼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패류학을 배운 적도 없고 박사 학위도 없는 그이지만 이제는 패류 연구에 일가견을 갖게 돼 웬만한 전문가들과 도움을 주고받을 정도가 됐다.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그의 연구소를 자주 찾는다.

“외국 조개를 1500여 종 모으기도 했지만, 정작 내 나라 조개가 외면받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게다가 많은 조개가 제대로 된 우리말 이름조차 갖고 있지 못 했어요.”

그의 이런 노력이 집대성된 것이 지난해 나온 ‘신 원색 한국패류도감’이다. 민 소장은 이 책에 자신이 10년 가까이 모아 온 패류의 사진과 이름, 서식지와 특징 등을 담았다. 한국 조개 도감으로서는 현재까지 가장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배불뚝이 떠돌이 고둥’ ‘떠돌이 짧은 바늘 고둥’ ‘연갈색 세모 거북 고둥’ 등은 보통 지름 1㎜ 정도로 현미경으로 봐야만 하는 작은 조개들이다. 전 세계에 알려진 이들 유각익족(有殼翼足) 목(目) 조개의 80%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데다 그가 대부분의 이름을 붙여 줬기 때문에 특히 애정이 많이 간다고 한다.

그는 요즘 2004년 출간 예정인 이 도감의 개정증보판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 일로 그는 이 연구소를 일반인에게 공개할 수 없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그의 고민은 앞으로 이 많은 조개들을 혼자 계속 관리할 수 없다는 것. 그는 국립 자연사박물관이 완공되면 이 ‘국보급’ 조개들을 기증할 생각이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