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김호석 개인전, 19점의 그림에 담긴 19가지 이야기

  • 입력 2002년 10월 15일 17시 13분


탈주전야.
탈주전야.
할아버지 등을 안장삼은 아이는 ‘이랴 이랴’를 멈추지 않는다. 두 손을 땅바닥에 대고 무릎까지 꿇은 할아버지는 땀에 젖었지만 웃고 있다. 작가는 세대간의 껴안기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갓 감은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털어 내고 있는 여인의 제목은 ‘탈주전야’다. 포동한 팔뚝살, 막 린스를 끝낸 듯 윤기 있는 머리칼을 터는 중년의 여인. 삶의 버거움으로부터, 지하 월셋방으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생각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주…. 그러나 속내의와 청바지 차림의 여인의 웃음은 싱그럽다.

사실주의 전통 인물화와 역사 기록화로 이 시대를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 온 한국 화가 김호석(45). 그가 3년 만에 갖는 개인전(18일까지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의 제목은 ‘열 아홉 번의 농담’이다. 19점의 그림을 통해 19가지 이야기를 담아냈다.

“삶은 농담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그린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웃거나 미소짓는다. 그는 웃음이야말로 선악(善惡)과 성속(聖俗)을 한꺼번에 무화시켜 버리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림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칼끝으로 꿀맛을 보는 할아버지를 그린 그림에서는 삶이 때로 단 맛을 배반하는 칼처럼 찬 것임이 느껴지고 쟁기를 끄는 노구(老軀)를 그린 ‘소’에서는 힘을 빼서도 안되고 더해서도 안 되는 팽팽한 삶의 긴장이 숨어있다.

그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닥종이에 배채(背彩)작업을 했다. 눈썹과 머리털 등은 앞에서 그리지만 색은 뒤에서 입히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맥이 끊겼던 전통 ‘배채 작업’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 색깔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그는 이번 작품들에서 “대상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는 상태까지 육박해 가려 했으며 동시에 더 이상 단순화시킬 수 없는 상태까지 덜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불가감(不加減) 필법’이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씨는 그가 이제 인생의 한 고비를 넘어가는 산마루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은 이제 필력의 성장이 아니라 성숙 또는 완숙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02-733-5877,6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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