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통해 동양의 '몸' 철학 해법찾는다

  • 입력 2002년 9월 16일 18시 03분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반, 젊은 연구자들의 모임인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실(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는 조선시대 의서(醫書)인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을 공부하는 모임이 열린다.

이들은 한의학 철학 문학 종교학 과학사학 사회학 만화평론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50여명의 연구자들로 3주전부터 자발적으로 모여 동의보감을 연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제 각각이나 그 중심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몸’ 담론의 동양적 시각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다.

“‘동의보감’을 통해, 몸을 바라보는 근대 이전 동양의 사유를 볼 수 있습니다. 도교를 비롯해 17세기 사상사를 이해하는 데도 이 책은 중요합니다.”(고미숙·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

1613년 허준의 주도로 초판이 발간된 ‘동의보감’은 중국 최고(最古)의 의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부터 16세기 말까지의 의서들을 종합한 데다 우리의 독자적인 의학과 임상 경험까지 총괄하고 있어 당시 ‘몸’에 대한 철학을 알 수 있다.

중국 의서들이 대부분 유교적 관점을 취한 데 반해, ‘동의보감’은 도교 의학의 관점을 도입해 신체 정신 심리 활동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이 세미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임영철(경희대 한의대 본과 4학년·서울대 물리학과 졸업)씨 등은 이미 동양의 몸 담론과 동양 의학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동의보감’은 신선이 되기 위한 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신선이 되기는 어려우니 우선 좀더 건강하고 조화롭게 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서양의 학문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오류없이 사고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동양에서는 어떻게 하면 편히 잘 살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박성관·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대부분의 의서들이 병의 원인과 치료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데 반해 ‘동의보감’은 제일 먼저 몸에 관한 이야기부터 나온다. 인간의 몸을 기준으로 병, 약, 치료가 따라오는 형식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신체의 작용을 ‘평균화’해서 진단하고 치료하지요. 평균화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하지만 동양에서는 증세가 같아도 환자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다르게 치료합니다.”(이진경·서울산업대 강사·사회학)

서구 중심의 학문 풍토를 반성하며 자생적 학문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들의 ‘동의보감’ 연구는 동양적 학문을 위한 하나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02-3673-1125

김형찬기자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