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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12일 1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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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많은 요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작자 미상의 글이 인터넷과 입소문을 통해 번져가면서 잔잔한 감동과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A4용지 두 장에 걸쳐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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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나타난 아버지는 우선, 속을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또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따뜻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깊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배쯤 될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이러다 보니, 아버지는 때로 이중적인 사람이 된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이다. 늘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자식들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며 어릴 때 아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 점차 나이 들면서 아버지를 기성세대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자식들의 보편적 정서도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작자미상의 저자는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아버지를 찬양한다.
"아버지는 뒷동산의 바위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최근 아버지를 여읜 40대 가정주부는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말했다.
1남 1녀를 둔 40대 회사원은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라는 대목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년 퇴직을 앞 둔 50대 후반의 직장인은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라는 구절이 특별히 마음에 와닿았다"며 친한 친구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이라며 이메일로 보내주었는데 내용이 감동적이어서 나도 여러 사람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