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 애국얼 바로 세우기…새 사료 바탕 평전 출간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18분


일본천황 폭탄 투하 직전에 찍은 이봉창 의사 사진

일본천황 폭탄 투하 직전에 찍은 이봉창 의사 사진

1932년 1월 8일 오전 11시44분, 일본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던 이봉창 의사(1901∼32). 그는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돼 아홉 달간의 고초를 겪은 뒤 10월10일 31세의 꽃다운 젊음을 조국에 바쳤다.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그것도 일왕을 사살하기 위한 의거였다.

그럼에도 이 의사의 후손이 없고 관련자료가 부족해 그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 연구 논문과 평전도 드문데다 1995년에 이르러서야 서울 효창공원에 동상이 세워지는 등 다른 독립운동가에 비해 소홀한 대접을 받아왔다.

이같은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언론인 홍인근씨(67·국제한국연구원 연구위원)가 4년여 노고 끝에 ‘이봉창 평전-항일애국투쟁의 불꽃, 그리고 투혼’(나남출판)을 출간했다.

동아일보 도쿄특파원과 편집국장을 지낸 그는 재일사학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와 최고재판소에서 발굴해낸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이 의사의 생애, 의거 과정 및 의미와 영향 등을 분석했다. 그가 검토한 자료는 이 의사 신문조서, 1회 공판조서, 이 의사 의견 청취서, 이 의사의 옥중수기인 ‘상신서(上申書)’, 김구 선생이 이 의사 의거를 회고한 ‘동경 작안(東京 炸案)의 진상(眞狀)’ 등.

그가 가장 주목한 자료는 이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기 이틀 전인 1932년 9월28일 김구 선생이 작성한 ‘동경 작안의 진상’.

그는 “2000년 봄 연구원에서 이 글을 접했을 때 심장이 멎는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고 회고했다. 의거의 의의와 경과를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게 서술한 글로 평가받는다. 홍 위원은 특히 “김구 선생과 이 의사가 최후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기록한 대목을 보면서 생사를 초월한 이의사의 달관에 감동했다”고 밝혔다.

김구선생이 이봉창 의사 의거를 회고란 '동경 작안의 진상'

‘사진을 박으려 할 때 나(김구)의 안색이 부지중 처참함을 보고 그(이봉창)는 나에게 은근히 말하기를 우리가 대사를 성취할 터인데 기쁜 낯으로 박읍시다 하였다. 나는 이에 감동되어 마음을 굳게 가지고 안색을 고쳤다’는 내용이다.

그는 또 ‘이 의사가 거사 직후, 가슴 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세 번 불렀다’는 그간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다.

그는 “항일독립운동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닌 딜레탕트가 이런 책을 써 부끄럽다”면서도 “일본에 남아있는 관련 사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해 이 의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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