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이 의사의 후손이 없고 관련자료가 부족해 그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 연구 논문과 평전도 드문데다 1995년에 이르러서야 서울 효창공원에 동상이 세워지는 등 다른 독립운동가에 비해 소홀한 대접을 받아왔다.
이같은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언론인 홍인근씨(67·국제한국연구원 연구위원)가 4년여 노고 끝에 ‘이봉창 평전-항일애국투쟁의 불꽃, 그리고 투혼’(나남출판)을 출간했다.
동아일보 도쿄특파원과 편집국장을 지낸 그는 재일사학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와 최고재판소에서 발굴해낸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이 의사의 생애, 의거 과정 및 의미와 영향 등을 분석했다. 그가 검토한 자료는 이 의사 신문조서, 1회 공판조서, 이 의사 의견 청취서, 이 의사의 옥중수기인 ‘상신서(上申書)’, 김구 선생이 이 의사 의거를 회고한 ‘동경 작안(東京 炸案)의 진상(眞狀)’ 등.
그가 가장 주목한 자료는 이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기 이틀 전인 1932년 9월28일 김구 선생이 작성한 ‘동경 작안의 진상’.
그는 “2000년 봄 연구원에서 이 글을 접했을 때 심장이 멎는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고 회고했다. 의거의 의의와 경과를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게 서술한 글로 평가받는다. 홍 위원은 특히 “김구 선생과 이 의사가 최후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기록한 대목을 보면서 생사를 초월한 이의사의 달관에 감동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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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박으려 할 때 나(김구)의 안색이 부지중 처참함을 보고 그(이봉창)는 나에게 은근히 말하기를 우리가 대사를 성취할 터인데 기쁜 낯으로 박읍시다 하였다. 나는 이에 감동되어 마음을 굳게 가지고 안색을 고쳤다’는 내용이다.
그는 또 ‘이 의사가 거사 직후, 가슴 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세 번 불렀다’는 그간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다.
그는 “항일독립운동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닌 딜레탕트가 이런 책을 써 부끄럽다”면서도 “일본에 남아있는 관련 사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해 이 의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