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담배는 독약'

  • 입력 2002년 9월 1일 17시 35분


“이런, 이주일씨가….”

28일 밤 인천으로 향하는 프랑크푸르트발 대한항공 KE906기 안. 옆 자리의 70대 노인이 오랜 친구를 떠나 보낸 듯 안타까워했다. 독일에서 학회 취재를 마치고 귀국하던 길이었다. 그 노인이나 필자나 기내에 배포된 신문을 통해 이주일씨의 별세 소식을 처음 접했다.

다음날 오후 집에 도착해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자 마자 벨이 울렸다. 한 방송국의 기자였다. 그는 필자가 3월에 ‘이주일씨가 말기 폐암으로 확진받기 3개월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지만 정상으로 나왔다’고 썼던 기사를 보았는데 그 병원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 기자는 이주일씨가 종합검진을 통해 발병 사실을 알았다면 폐암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여기는 듯했지만 과연 그럴까? 필자는 그럴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몸이 예전같지 않아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에서 암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몸에 이상을 느낄 정도였다면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이주일씨는 최근 몇 년 동안의 생활에 대해 후회한 것 같다. 많은 폐암 환자들은 “몇 년 전이라도 담배를 끊었다면…”하며 가슴을 치지만 그렇다고 암을 100% 예방할 수는 없다.

폐암은 보통 몇 년 동안에 세포가 변형돼 암세포가 생긴 뒤 대략 20년 동안 서서히 진행하기 때문이다.

암세포가 분열을 시작했다면 담배를 끊는다고 효과를 볼 수 없다. 따라서 청소년기나 20대, 30대의 금연이 중요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올초 ‘청소년 흡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서울시내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흡연을 전면 금지키로 한 것은 잘 한 일이다. 20세 이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비흡연자에 비해 폐암 발병 위험이 9배 높지만 16세 이전에 시작하면 27배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교육계의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곳곳에서 금연 운동의 암초(暗礁)가 존재한다. 또 외신에 따르면 선진국의 담배 제조회사들은 개도국의 청소년과 여성을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다.

우선 교육 현장에서는 왜 청소년의 금연이 필요한지 암 발병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흡연이 성기능, 피부 미용, 체력 등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가르쳐야 한다. 교사들은 적어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한다.

TV에서 인기 스타가 담배 피우는 장면을 내보내지 않도록 해 청소년의 모방 흡연을 차단하는 것도 시급하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는데 아이도 피우고 있다면 부자가 함께 금연에 들어가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주일씨는 ‘담배는 독약’이라는 말을 남겼다. 특히 청소년과 20, 30대의 흡연은 최소 20년 뒤 한창 일할 나이에서 암을 부른다는 점에서 ‘독약 중의 독약’이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