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孟母三遷(맹모삼천)

  • 입력 2002년 8월 27일 17시 36분


孟 母 三 遷(맹모삼천)

遷-옮길 천 齊-가지런할 제 宗-종묘 종

說-기쁠 열 斷-끊을 단 哭-울 곡

儒家(유가)의 가장 큰 특징은 敎育(교육)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배울수록 깨우치며 많이 배워야 君子(군자)가 되고 나아가서 聖人(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이 중시했던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도 사실은 敎育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점은 교육에 비판적이었던 老莊(노장)의 道家(도가)나 극력 반대했던 韓非子(한비자), 李斯(이사) 무리의 法家(법가)와는 크게 다르다.

儒家의 祖宗(조종)이라 할 수 있는 孔子(공자)는 敎育 분야의 선구자였다. 晩年에 오면 교육과 저술에 전념해 3000명의 제자를 길러냄으로써 동양 최초의 ‘스승’이 된다. 그래서인지 論語(논어)를 펴 보면 첫 머리부터 ‘공부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그의 가르침을 이은 孟子(맹자) 역시 敎育을 중시했다. 사실 ‘敎育’이란 말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君子(군자)가 지니는 세 가지 즐거움을 들었는데 그 중 마지막이 ‘天下의 英才를 얻어 敎育’하는 즐거움’이라고 했다(得天下之英才而敎育之).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敎育은 環境(환경)의 支配(지배)를 받는다. 敎育과 함께 環境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도 孟子였는데 어머니의 영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 혼자 되어 오직 아들 孟子의 敎育을 위해 헌신했던 분이다. 자식을 유학보냈지만 미처 학업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자 짜던 베를 싹둑 잘랐다는 ‘斷機’(단기)의 고사는 유명하다.

또 그가 어릴 적에 처음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이 때문에 孟子는 심심하면 哭(곡)소리를 흉내내곤 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 시장으로 이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사치들의 물건파는 흉내만 냈다. 이것도 안 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서당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글 읽는 흉내만 냈다고 한다. 孟子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孟母三遷’의 고사다. 그렇다면 孟母는 동양 최초의 치맛바람을 일으킨 사람이기도 하다. 劉向(유향)이 편한 列女傳(열녀전)에 보인다.

지금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가곤 한다. 거주이전의 자유는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다. 문제는 특정 學群(학군)을 노리고 위장전입하는 경우다. 제 2의 孟母(맹모)인 것 같지만 사실 孟子 때는 學群이라는 것이 없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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