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학생 25명 위안부할머니 방문 증언들어

  • 입력 2002년 8월 13일 18시 33분


'니눔의 집'을 찾은 일본 학생들이 한 위안부 할머니로부터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들이 겪었던 삶과 고통에 관한 얘기를 숙연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 사진제공 한남대
'니눔의 집'을 찾은 일본 학생들이 한 위안부 할머니로부터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들이 겪었던 삶과 고통에 관한 얘기를 숙연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 사진제공 한남대
“지금도 걸어다니다 보면 공연히 코피가 나요. 위안부 생활 때 이런저런 이유로 개처럼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지요. 너무 어려서 성 관계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금 커서는 성 관계를 꺼린다는 이유로….”

13일 오전 11시 위안부 할머니 10명이 함께 모여 사는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 자매 대학인 대전 한남대의 주선으로 이곳을 방문한 일본 나고야 난잔(南山) 대학과 오키나와(沖繩) 국제대학 학생 25명은 초등학생 때 취직시켜준다는 꾐에 빠져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강모 할머니(75)의 증언에 소리 없는 눈물을 쏟았다.

▼위안부얘기 처음 들어▼

강 할머니를 포함한 두 할머니의 증언은 한시간 반만에 끝났다. 하지만 숙연한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일부 일본 학생들은 머리를 숙인 채 혼잣말처럼 작게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오늘 이야기를 일본에 가서도 잊지 않고 전하겠습니다. 할머니 여러분 건강하세요.” (사사키 유·21·난잔대학)

“할머니들의 증언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지….”(도야마 유키노·21·여·오키나와 국제대학)

“군위안부에 대해 얘기를 듣는 건 처음입니다. 앞으로 일본 역사와 더불어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습니다.”(하세가와 사에·23·여·오키나와 국제대학)

일본 학생들은 자신들이 느낀 슬픔과 다짐을 담은 메모를 종이에 적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전달하며 위로했다.

이날 행사는 한남대가 일본 자매대학 학생들을 초청해 8월 한달 동안 실시하고 있는 ‘한국문화 체험’ 행사 가운데 하나로 마련됐다.

▼밤새도록 눈물바다▼

일본 학생들은 나눔의 집을 찾기에 앞서 12일 오전 한남대 대학교회에서 대전에 사는 위안부 할머니 김모씨(76) 등 2명으로부터 한으로 점철된 위안부 인생담을 들었다. 교회는 울음바다로 변했다.

야마모토 게이코(21·여·오키나와 국제대학)는 “이틀 동안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고국으로 돌아가면 이런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한일 양국이 발전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위안부할머니 138명 생존▼

한편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는 207명. 이 중 69명이 사망하고 138명이 생존해 있다. 그러나 6월 경북 대구의 서봉임(徐鳳任·80) 할머니가 사망하는 등 올해 들어서만 한 달에 한 명꼴로 모두 7명이 사망했다.

생존자 가운데 최연소자가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사는 67세의 김은례(金銀禮) 할머니인 점을 감안하면 시간은 이들 편이 아니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본과의 협상에서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은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리는 거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尹美香) 사무처장은 “할머니들은 죽기 전에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싶어 한다”며 “배상만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할머니들의 명예를 다시 한번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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