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사학자 이이화씨 “선친이 일군 학문 대중운동으로 승화”

  • 입력 2002년 8월 4일 17시 24분


민중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이이화 소장은 부친인 야산선생의 학문정신을 이어받아 현실에 적극 대응하는 정신으로 고전을 재조명하겠다고 말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민중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이이화 소장은 부친인 야산선생의 학문정신을 이어받아 현실에 적극 대응하는 정신으로 고전을 재조명하겠다고 말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민중사관에 입각한 사학자로 활발한 연구작업을 벌이고 있는 이이화(李離和·65) 역사문제연구소 고문이 주역을 연구하는 ‘홍역(洪易)사상연구소’ 소장이 됐다. 5월말 취임한 이 소장은 3일 서울 흥사단 대강당에서 ‘주역과 수리·물리학’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 연구소는 대중을 상대로 한 주역 강의로 유명한 대산 김석진(大山 金碩鎭·74) 옹과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홍역’이란 김 옹의 스승인 야산 이달(也山 李達·1889∼1958)의 주역 사상을 가리킨다. ‘홍역’은 중국에서 탄생한 ‘주역’을 우리의 현실에 맞게 응용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 소장은 야산의 친아들이다.

“아버지의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소 소장을 맡는다는 것이나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학자로서 주역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전의 무덤 속에서 헤매자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현대 정신으로 고전을 재조명하자는 것입니다. 연구실의 업적이 아니라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대중운동적 차원의 활동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고 대산 역시 그렇게 빡빡한 분이 아니에요.”

‘주역’에 대한 접근에서도 그의 민중사학자적 면모는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아무래도 민중사학과 주역의 신비주의적 성격은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주역이나 아버지의 삶에 신비주의적인 면이 있는 것은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정조 시대의 탕평책도 주역에서 따온 것이고, 동학이나 증산도의 후천개벽론도 역시 주역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다산 정약용 같은 이가 했던 것도 바로 고전을 그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며 당대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은 것이 아닙니까.”

아들로서 본 아버지 야산은 어떤 분이었는가를 물었다.

“제자들에게는 다 나눠주면서도 가족에게는 대단히 엄격했어요. 공부를 할 때는 아버지 앞에서 글을 외우는데 막히면 정면으로 대나무 회초리가 날아오지요. 한 번 맞으면 이마에 피가 ‘쫙’ 흐르는데, 그 때 피를 닦으면서도 울면 안 됐어요. 그것은 불문율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부친을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존경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뭔가 좀 달랐어요. 술을 드시면 술 주정도 하셨지만, 산 속에서 지내시면서도 단 한 번도 배고프다거나 춥다고 말하신 적이 없었어요. 누가 새 옷을 해 드려도 길에서 추워하는 사람을 보시면 벗어주고 오시곤 했지요.”

야산은 사승(師承)관계도 없다. 혼란하던 시기에 혼자 돌아다니던 유랑지식인이었고 주역에서 홀로 일가를 이룬 것이다.

이 소장은 10대 초반에 대둔산에 은거하던 부친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16살에 가출했다.이유는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는 것이다. 고아원에도 있었고 여관에서 심부름도 하면서 학교를 제대로 다 마치지는 못했지만, 동학이나 위정척사론 등에 관한 그의 논문은 제도권 학계에서도 주요한 논문으로 읽힌다.

“젊었을 때 동아일보에서 임시직원으로 책을 만들었던 것이 학부,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한문공부를 했을 때가 석사, 규장각에서 사료를 볼 때가 박사 과정이었던 셈이지요.”

이 소장은 지금 자신의 민중사관에 입각해서 일반인들을 위해 총 24권에 달하는 ‘한국사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작년에 조선후기까지 15권을 냈고 현재 근대사 부분을 집필중이지만 이 연구소에 거는 기대는 또 다르다.

“주역을 연구하고 이를 학술운동 차원에서 펼칠 이론적 바탕을 갖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어요. 주역을 중심으로 여러 고전에 상당히 폭넓게 접근할 겁니다.”

▼주역과 홍역▼

‘주역(周易)’은 BC 10세기 경 중국에서 만들어진 책으로 고대인들이 자연과 사회의 변화를 겪으며 미래의 변화를 추측하고 그 길흉의 의미를 찾던 기록이다. 이 때문에 영어로는 ‘Book of Change(변화의 책)’으로 번역된다.

‘홍역(洪易)’은 야산 이달이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의 오행사상을 주역의 음양사상과 결합시킨 자신의 주역 사상을 가리킨 용어로 이제는 그의 제자인 김석진 옹을 중심으로 대중 속에 파고들며 계승되고 있다.

주역에 대한 연구는 중국에서도 대부분 왕필(王弼) 정이(程?) 주희(朱熹) 등의 해석이나 한대(漢代)의 역학에 대한 재해석에 머물러 있지만, 야산은 이를 한국의 현실에 적용했다.야산의 홍역은 특히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한국현대사의 어려운 질곡을 겪던 시기에 주역의 변화 사상을 한국의 현실에 응용하며 현실의 변화를 시도하고 동양문명의 희망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