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좀 빈둥거리면 어때

  • 입력 2002년 8월 1일 16시 19분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30대 초반의 김모씨. 그는 늘 바쁘다. 일과표에는 시간대별로 스케줄이 가득하다. 회사일이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시간에도 빈 공간이 없다. 새벽에는 학원에 나가 영어를 공부한다. 저녁에는 중국어를 배우고, 밤에는 시간이 되는 대로 헬스클럽에서 운동한다. 운동은 얼마 전에 시작했다. 요즘은 동네 피트니스클럽도 24시간 개방하는 곳이 많아 시간이 없는 그도 과감히 도전한 것이다.

주말에는 쉬느냐 하면, 물론 아니다.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그건 시간관리에 목숨을 거는 그에게 모욕이나 다를 바 없다. 주말을 이용해 그는 사람들을 만난다.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셔야 할 사람이 있으면, 역시 시간대별로 약속을 정해 꼼꼼히 해치운다. 그럼 일요일에는? 산에 간다.

한마디로 그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시간을 가장 견디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다. 어쩌다 잠깐씩 상실감 비슷한 게 목에 걸릴 때가 있지만.

30대 주부 서모씨. 역시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시간을 가장 못견뎌 한다. 덕분에 살림도 윤이 나게 하지만, 영어공부부터 시작해 동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안 배운 강좌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독서광이다. 이 방 저 방, 화장실까지 짬짬이 읽는 책들이 언제나 서너 권씩은 놓여져 있다. 단 1분이라도 헛되이 있는 시간을 용납하지 못하는 탓이다. 남들 보기에 그 또한 대단한 사람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고 있고. 역시 잠깐씩 허탈감에 발이 빠지는 듯한 이상한 상실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바쁘고 바쁜 요즘 사람들에게 시간관리는 곧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시간을 어떻게 올바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판가름난다는 식의 논리 또한 조금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앞서 예를 든 두 사람처럼 강박증이 된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다.

우리 삶에는 여백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시간과 시간 사이에도 여백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잠깐의 휴식에도 죄책감을 느껴서야 여백이 생겨날 자리가 없다. 시간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이 상실감을 경험하는 것도 이 여백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시간에서 빠져나와 온전하게(?) 빈둥거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 놓치고 보지 못했던 원경을 볼 수 있다면 생활은 좀 더 풍성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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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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