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9년째 장기공연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 김민기 학전대표

  • 입력 2002년 7월 31일 18시 26분


사진=이훈구기자
사진=이훈구기자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연출자인 김민기 학전 대표의 얼굴은 꺼칠했다. 서울 대학로 학전그린소극장에서 지난달 30일 막을 올린 새로운 ‘지하철’ 팀과 3개월간 연습에 몰두했기 때문일까. 그에게 먼저 22대 1의 경쟁을 뚫은 새로운 팀의 공연에 만족하는지 물어봤다.》

“공연에 만족이라는 게 있겠어요? 새 출연진은 젊고 발랄해졌지만 아직 숙성된 맛이 없어서…. 연극배우는 노래가 안되고 뮤지컬배우는 연기가 부족하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연습만으로는 50% 수준 정도밖에 안돼요. 관객 앞에서 한달쯤 공연해야 나머지가 채워지겠죠.”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5월 초연 후 지난달 28일까지 1522회 공연을 기록했고 32만여명이 관람했다. 100여명의 배우가 이 무대를 거쳐갔고 방은진 설경구 박윤선 등 스타들도 배출했다. 소극장 단일 공연으로 1500여회를 넘긴 원동력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미련하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며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짓는다.

‘지하철 1호선’은 9년째 공연되면서 몇 차례 수정과 보완을 거쳤다. 그는 “내년 홍콩 공연에서는 본격적으로 작품 분위기를 바꿀 것”이라며 “지금의 검은색 무대를 좀더 실감나는 풍경으로 바꾸고 다양한 영상을 추가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지하철 1호선’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새로운 작품도 구상 중이다. 지금까지 독일 영국 등 서구의 작품을 번안했지만 이제는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 등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형식을 ‘추출’하겠다는 것.

외국의 ‘블록버스터 공연’이 쏟아지는 요즘,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대형 뮤지컬 유행은 어쩔 수 없는 추세죠. ‘레미제라블’같은 작품은 웅장한 스케일과 출연진의 뛰어난 가창력, 연기 등 나무랄 데가 없어요. 문제는 이런 외국 작품이 돈만 벌고 그냥 떠난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장르의 뮤지컬을 종합적으로 소화하면서 우리의 역량을 축적해야 합니다. 국내 작품도 숙성되기 위해서는 장기공연을 해야 하고 관객 인프라가 형성돼야 합니다. 반짝 흥행만 노리면 내실있는 발전을 꾀할 수 없어요.”

그는 미국 브로드웨이 작품의 디자이너와 스태프를 데려와 선진 무대의 역량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본 공연계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공연을 지켜보며 간간이 안경을 쓰고 악보와 대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공연 1막이 끝나자 노래 담당 이미옥씨(가수 윤도현의 부인)를 불러 출연진이 고쳐야 할 점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학전의 한 직원은 “김 대표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음향이 조금 이상하지 않니?’라고 말하면 다음 날 스태프진이 어김없이 수정해야 할 정도로 매사에 완벽주의자”라고 귀띔했다.

10여년 전 김 대표는 학전 소극장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음반을 낸 적이 있다. 그는 ‘봉우리’라는 노래에서 “내가 오른 것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라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지하철 1호선’이라는 고갯마루를 오른 그는 이미 다른 봉우리를 향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일까.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새 '지하철1호선'은

'지하철1호선'에서 거리질서 요원들이 포장마차를 철거하려고 하고 있다 [사진=이훈구기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골격은 1994년이나 올해나 큰 변화가 없다. 1990년대 한국 서울의 모습으로 남겨두겠다는 연출자 김민기의 고집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새 공연에는 기존의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에다 강원도 제주도 사투리를 추가했다. 초연 때부터 전국의 지방색을 넣어 ‘국민 뮤지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세 번이나 오디션을 했는데 드디어 제주도 아가씨가 응시했기에 ‘요때다’ 싶더라고. 못 알아듣는 것으로 치면 전라도나 경상도는 사투리도 아니지(웃음).”

1990년대가 배경이지만 최근 상황도 가미했다. 시민들과 거리질서 요원들의 몸 다툼이 있을 때는 2002 월드컵에서 유행한 ‘대∼한민국’ 구호가 나오고 “1호선은 좌측 통행, 2∼8호선은 우측통행”이라는 ‘요상한’ 질서 행태가 노래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제 ‘아홉살’이 된 ‘지하철 1호선’의 내용은 옌볜(延邊)에서 남편감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온 선녀가 바라본 서울 풍경을 담고 있다. 회사원 시간강사 작부 기둥서방 등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웃음과 애환이 묻어있다. 분단 입시 교통지옥 등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으면서도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포장마차 할머니는 “그래도 산다는 게 참 좋구나”라며 희망을 노래한다.

이 밖에 그동안 긴 머리로 등장했던 청량리 588의 창녀 걸레 역의 문혜영이 삭발을 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99학번인 방진의가 선녀 역을 맡아 열연한다. 5인조 록밴드 ‘무임승차’의 록과 재즈를 넘나드는 사운드도 매력적이다. 12월31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 7시반, 일 공휴일 오후 3시 7시(월 쉼). 1만5000∼2만5000원. 02-763-8233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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