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濯 足(탁족)

  • 입력 2002년 7월 31일 13시 50분


濯-씻을 탁 暑-더울 서 寵-사랑할 총

猜-샘낼 시 讒-간악할 참 纓-갓끈 영

‘濯足’(발을 씻음)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즉 朱子學(주자학)이 통치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던 조선시대 남녀간의 구별이 엄격해지면서 등장한 避暑法(피서법)의 일종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대낮에 훌렁 벗고 몸을 물에 담근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때라 그저 조용히 한 밤에 우물가에서 물을 끼얹거나 계곡을 찾아 발이나 담글 정도였으니 이름하여 ‘濯足’(탁족)이라 했다.

그런데 濯足에는 다른 뜻도 있다. 옛날 중국 戰國時代 楚나라에 屈原(굴원·BC 343-BC 290)이라는 忠臣(충신)이 있었다. 귀족으로 태어난 데다 천부적인 文才(문재)로 나이 22세부터 懷王(회왕)의 문공담당관이 된다. 寵愛(총애)가 각별해 함께 국정을 논하는가 하면 때로 賓客(빈객)을 접대하고 외교를 맡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猜忌(시기)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제왕의 英明(영명)함이다. 是非曲直(시비곡직)을 따져 忠奸(충간)을 가린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불행하게도 역사에서 그런 제왕보다는 간신의 讒言(참언)에 귀를 기울였던 제왕이 훨씬 더 많았다.

屈原 역시 간신들의 讒疏(참소)로 일생동안 무려 세 번이나 귀양을 가면서 50여 평생을 파란만장하게 마감하고 만다. 결국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돌을 품고 汨羅水(멱라수)에 몸을 던지니 지금의 端午節(단오절)은 죽은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비롯되었다.

그가 남긴 문학작품 중 유명한 것이 ‘離騷’(이소)다. 조선 松江(송강) 鄭澈(정철· 1536∼1593)의 ‘思美人曲’(사미인곡)이 그의 ‘離騷’를 빗대어 지어진 것임은 다 아는 사실. 그의 또 다른 작품에 ‘漁父辭’(어부사)가 있다. 여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보인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滄浪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滄浪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

귀양을 가서 초췌하고 실의에 찬 모습으로 강가를 거닐 때 그를 알아본 어부가 놀라 묻자 자신이 귀양을 오게 된 까닭을 말했다. 즉 혼탁한 세상에 함께 흐릴 수가 없어 홀로 깨끗함을 누리고 싶다고 하자 어부가 한 말의 일부다. 탁하면 탁한 데로 함께 어울릴 것이지 왜 홀로 깨끗함을 고집하다가 귀양까지 오게되었는가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濯足은 濯纓(갓을 씻음)과 함께 속세를 등지고 은둔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