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광화문 토종-외국인 샐러리맨의 '내가 잘가는 맛집'

  • 입력 2002년 6월 27일 16시 11분


광화문의 점심시간, 식당을 찾아가는 회사원들로 인도는 가득 차지만 어지간해서 ‘빈 자리가 없는 식당’은 드물다.

맛에 있어서 광화문을 평정한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권역별 직군별로 선호하는 식당과 시간대가 비교적 고르게 분산되기 때문이다. 전광판 앞에서 모두 하나가 됐던 세종로 네거리의 수십만 인파처럼, 이곳의 식당가도 입맛의 편중없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음식의 백화점이다. 세종로 네거리를 기점으로 각각 동서남북에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사람들’이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는 ‘광화문의 맛’에 대해 들어봤다.

●기동성 있는 점심

‘아서 디 리틀’의 컨설턴트 이현경씨(27)는 “식사시간이 불규칙해 주로 샌드위치가 점심”이라며 “광화문은 ‘기동성 있는 점심’을 즐기기에 알맞은 점에서 가장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마녀의 식탁’이란 뜻의 ‘위치스 테이블’ 샌드위치점에서 모차렐라 치즈 샌드위치와 샐러드, 커피를 한꺼번에 주문해 먹는 때가 가장 많다. 패스트푸드점처럼 빨리 먹을 수 있지만 훨씬 질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안심이다. ‘바나나토스트’처럼 과일을 곁들인 음식도 있다. 외국인 스태프는 ‘이마’와 ‘탄탈루스’의 샌드위치를 선호한다.

사무실이 교보빌딩에 있는 이씨가 회사 사람들과 즐겨 찾는 간담회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옆 건물 스타벅스 커피숍의 옥상 테이블이다. 세종로 네거리가 한눈에 들어와 여유있는 오후의 한 때를 즐길 수 있다. 파이낸스빌딩 지하의 커피빈에서 파는 치즈케이크와 에그샌드위치는 제법 양이 많아 ‘에스프레소 콘 파냐’ 커피와 함께 점심으로 먹기도 한다.

교보빌딩 옆의 ‘다소미’ 김밥에서는 10인분 이상이면 언제든 배달을 해 주기 때문에 김밥과 초밥을 즐겨 주문해 먹는다. 가끔씩은 흥국생명빌딩의 ‘르 시안’에 가서 반쪽 짜리 샌드위치, 샐러드, 수프로 구성된 세트메뉴 점심을 먹는다.

●외국인들의 점심

EDS코리아의 존 모트 사장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오피스타운에서 ‘복수의 요리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 광화문이라고 말한다. 파이낸스빌딩에 있는 모트 사장은 빌딩 지하 ‘치폴라’ 햄버거집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햄버거를 먹기 좋게 잘라 줄 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의 테이블 세팅 속도가 총알같이 빨라 좋다”는 것.

한식당으로는 같은 빌딩 내의 용수산을 좋아한다. 메뉴판에 영어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어 음식을 이해하면서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 또 방석을 깔고 앉는 좌식형의 한정식집에 가면 한국파트너들이 점심 때부터 도수 높은 술을 권할 때가 많아 곤란하지만, 식탁과 의자로 내부가 꾸며진 용수산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어 좋다.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그는 파이낸스센터빌딩 지하 2층의 펍 ‘벅 멀리건스’로 간다. 점심 뷔페는 1만5000원이지만 충실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 ‘반주’로 먹는 맥주 한 잔에도 ‘차별화 된 시원함’이 있다.

가끔은 ‘남하’를 감행해 조선호텔의 ‘나인스게이트’나 ‘오킴스’ 식당으로 걸어간다. “이따금씩 붉은 악마들이 축제를 열기도 하고,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기도 하죠. 다이내믹한 시내 중심이지만 조선호텔은 역설적으로 가장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약간 언덕 위에 있어서 그런가 봐요.”

●전통과 현대의 공존

씨티은행의 김휘준 마케팅 수석부장(34). 그는 “광화문에서 서대문쪽으로 약간 치우친 회사의 위치 상 전통식과 현대식을 절충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흥국생명빌딩의 패밀리레스토랑 ‘토니로마스’나 ‘스파게띠아’에 들러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먹거나 ‘나무와 벽돌’에서 피자 스파게티 등을 자주 선택한다. 날씨가 우중충하거나 한식이 당기는 날엔 언제든지 건널목 하나 건너고 지하도 하나 지나 교보빌딩 뒤의 ‘안성 또순이네’ 생태찌개를 먹든지, 청진동 ‘청진옥’에 들러 6000원짜리 술국을 먹는다.

서울역사박물관 근처 한식집 ‘미르’에서 게장정식을 먹거나 강북삼성병원 근처까지 걸어가 ‘남도추어탕’집에 들르기도 하지만, 정동에 있는 퓨전중식당 ‘젠’의 레몬새우 요리도 좋아한다.

직원 회식 날은 대부분 구세군회관 근처의 ‘황우촌’을 찾는다. 20여명이 한꺼번에 앉아도 의사소통이 편한 널찍한 방이 있는 데다가, 이곳만의 별미인 ‘치맛살’ 고기가 사람들의 입맛에 보편적으로 맞기 때문. 종로1가 국세청 빌딩 꼭대기에 있는 ‘탑 클라우드’에서 파스타나 스테이크를 먹으며 종로와 광화문 전경을 살피는 경우도 있다. 한국-포르투갈전 때도 씨티은행 직원들은 이곳을 ‘로열박스’ 삼아 실내의 TV스크린과 외부의 응원단 모습을 번갈아 보며 관전했다.

●정부청사는 다양한 한식

국무총리 정무비서관실 윤창렬 과장(38)은 “교보빌딩이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웬만해서는 세종로 네거리의 건널목을 건너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 차장은 부인이 광화문 근처에 놀러올 때에 한해서 파이낸스빌딩을 찾아간다. 지하 2층 이탈리아 식당 ‘메짜루나’에서 해물 스파게티와 피자를 시켜 먹으면서 수다를 떨면 적당히 분위기를 잡을 수 있다.

종합청사 공무원들은 대개 주변의 한식집 단골이다. 일주일에 서너번 들르는 곳은 청사 후문쪽의 ‘대복집’이다. 된장찌개 삼겹살 성게국 등 어느 하나로 특화되지 않은 다양한 메뉴가 오히려 매력포인트다. 세종문화회관 옆의 중식당 ‘가봉루’에서는 국물 맛이 시원한 굴짬뽕을 즐겨 먹는다. 경찰청 옆 ‘사랑방’에서는 근처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생태찌개와 매생이국을 먹을 수 있다. 회식 날은 오리고기 전문점인 ‘금강산’에 가는 게 보통이다. ‘안집’에 들르면 1만원 안팎의 싼 한정식을 먹을 수 있다.

여직원이나 젊은 사무관들은 인근의 버거킹, 하디스, 피자벨 등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로즈버드나 스타벅스 같은 테이크아웃 커피숍에서 버블 티나 아이스커피를 뽑아들고 세종문화회관 주변을 거닌다. 윤 차장은 동년배 공무원들과 ‘식후 경복궁 산책’을 빼놓지 않는다. 이따금씩 사극촬영을 구경할 수도 있고, 걷기로 운동부족을 보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