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말 돌리지 마"

  • 입력 2002년 6월 27일 16시 11분


한 중학교 참고서에 실려 있다는 짤막한 대화 하나.

“너 우산 갖고 왔니?” 영희가 경란에게 물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영희는 우산을 갖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응, 엄마가 챙겨주셨어.” 경란이의 대답.

이 대화에서 영희의 말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 사실은 경란이와 우산을 같이 쓰고 가자고 말하고 싶은 걸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참고서의 저자는, 우리의 말 속에는 때때로 숨은 의도가 들어 있으므로 대화를 나눌 때, 그 숨은 의도를 잘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는 뜻풀이를 달아놓았다고 한다.(내가 이 얘길 들은 건 라디오를 통해서다. 그러므로 약간의 첨삭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핏 참고서의 뜻풀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라디오 진행자 역시 그 얘길 인용하며,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상대방 말의 숨은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의 말을 한 걸 봐도 그렇다.

물론 그럴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적인 면에서 보면, 실제로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숨은 의도를 알아차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숱한 무의식의 실타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위의 참고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뜻풀이에 익숙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덕분에 마치 상대방의 숨은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오해도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지레짐작해 멋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저지를 때도 적지 않다. 대화를 나눌 때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를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수련의 시절의 내 경험담 하나. 누가 의국의 창문을 열어놓아 몹시 추웠다. 마음 같아선 창문을 닫고 싶었지만, 그 대신 나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춥지 않아요?” 하고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자 곁에 계시던 선생님이 “추우니까 창문을 닫자”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법을 익히라는 충고의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에둘러서 말하는 버릇에 익숙한 사람과 대화하는 건 몹시 피곤한 일이다. 물론 지나치게 직접적인 표현도 문제가 되긴 하지만. 그 사이에서 중도를 찾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www.mind-open.co.kr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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