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장인정신]논현동 가구거리 '최가네 철물점'최홍규씨

  • 입력 2002년 5월 15일 18시 24분


두 아들의 아버지인 최홍규씨는 '상업예술을 지향하는 철물점을 대물림하겠다'고 말한다.
두 아들의 아버지인 최홍규씨는 '상업예술을 지향하는 철물점을 대물림하겠다'고 말한다.
《서울 논현동 가구 거리의 ‘최가네 철물점’. 최홍규 대표(45)가 1989년 세운 이 철물점은 개목걸이 연통 빗자루 등을 파는 여느 철물점과 다르다. 지상 2층, 200여평 규모의 철제 건물 내부에 진열된, 매끈하게 마무리된 촛대와 문고리 경첩 의자 책상 등 모두 철제로 만든 인테리어 용품은 “철제 용품에 공예 개념을 도입했다”는 최씨의 말대로 하나 하나가 예술품이다.》

서울 도곡동에 건설 중인 주상복합단지 ‘삼성 타워팰리스’ 등 대기업의 공사에 문손잡이 난간 기둥을 디자인해 납품하고 있는 최씨는 논현동 매장 외에 경기 벽제에 대장간을 갖고 있다. 10여명의 디자이너와 기능공들은 이곳에서 고객이 원하는 ‘컨셉트’에 맞춰 각종 철제 인테리어 용품을 디자인해 금속 공예 기법으로 수작업으로 물건을 제작한다.

최씨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원칙으로 한다”며 “최가네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은 ‘희귀성’과 ‘소장가치’이며 이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예술품을 만들어 공급한다는 정신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70년대 중반 서울 을지로 철물점 ‘순평금속’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한 최씨는 당시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놀기 뭣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은 재수생이었다.

그러나 순평금속에서 하나하나 일을 배워가면서 그는 철제 가공에 재미를 들였다. 미군부대에 물건을 팔면서, 당시만 해도 생소한 분야인 ‘하드웨어 스케줄’ 등을 미국인들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우며 인테리어 사업에 눈을 떴다. 하드웨어 스케줄이란 경첩 파이프 문고리 등 각종 공사에 들어갈 자재를 과학적으로 계산해 필요 수량을 정하는 것.

86년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공사 때 공중전화 부스 등을 디자인하고 88년경 서울 청담동과 명동에 새로 생겨나는 카페에 사람 얼굴, 형이상학적인 태양신의 모습을 한 실험적 디자인의 문고리 등을 직접 디자인해 공급하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예술품 같은 철제 용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시공사들은 앞다투어 그를 찾았다. ‘상업 예술’로 성공한 사람으로 ‘성공시대’ 같은 TV프로그램에서 출연제의가 들어왔으나 모두 거절했다.

“스스로 ‘성공’했다는 말을 하기에는 턱없이 이르다”는 것. ‘퀄리티’ ‘희소성’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규모에서 모든 것을 직접 챙겨야 하며, 이를 위해 영원히 ‘크게 성공한 사람’의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예술가가 아닌 장사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그는 내년 1월 완공예정으로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지상 6층, 지하 1층 규모의 ‘쇳대 박물관’을 신축 중이다. 그는 이곳에서 실력은 있으나 돈벌이가 마땅치 않은 금속 공예 예술인들을 ‘포섭’할 생각이다. 그들의 뛰어난 디자인을 구입해 최가네 철물점 제품 디자인에 적용,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예술인들에게는 로열티 수입을 보장해 줄 계획.

최씨는 “상호에 집 가(家)자를 넣은 이유는 자존심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뜻이며 품질, 희소성 지상주의를 대물림하겠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