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비만클리닉 전문의 박용우교수의 살빼기 체험기

  • 입력 2002년 2월 21일 14시 09분


풍선 다이어트, 반창고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다이어트 비법들이 나와 사람들을 솔깃하게 만든다. 다이어트 시장 규모가 2000년 1조원에서 2003년이면 2조원대로 성장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그런데도 뚱뚱한 사람은 오히려 늘고 있다. 돈을 들여 일시적으로 살을 뺄 수는 있지만 그 효과가 6개월 이상 지속되기는 어렵다.

“적당한 운동과 식이요법 외에 다이어트방법이란 없다”고 단언해 온 비만클리닉 의사 박용우 교수. 박 교수가 자신의 주장을 ‘온몸’으로 입증해 보였다.

“여보, 나 샐러드 만들어 줘.”

오전 6시반. 나의 아침은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내는 싫은 소리 한마디 않고 벌떡 일어나 다이어트용 샐러드 메뉴로 아침상을 차린다. 석달 만에 몸무게는 10㎏, 허리는 4인치가 줄어 연애 시절의 늘씬한 몸매로 돌아온 남편이 다시 뚱뚱해질까봐 겁이 나는 모양이다.

살은 운동으로 뺐지만 운동을 계속할 형편이 못 돼 요즘엔 식이요법과 하루 만보 걷기를 한다. 다행히 살을 뺀 지 8개월이 지났는데 요요현상이 없이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아침은 무조건 샐러드다. 직장 생활을 하면 하루 2, 3끼를 밖에서 해결해야 한다. 외식을 하면 야채를 먹기가 쉽지 않다. 전날 다듬어 둔 샐러리 양상추 옥수수 방울토마토와 노랑 빨강 초록 피망을 기본으로 참치캔, 버섯, 로스트 치킨, 치킨 소시지 등을 번갈아 곁들인다. 드레싱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올리브유에 간장과 식초를 넣어 만든 ‘오일 앤 비니거(oil and vinegar)’. 식료품 회사에서 나오는 것도 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운지 아내가 직접 만들어둔다. 야채는 칼로리가 적지만 탄수화물 단백질 섬유질이 풍부한 데다 드레싱으로 식물성 지방을 곁들이기 때문에 샐러드 한 접시만 먹어도 점심 때까지 든든하다.

점심은 주로 병원 식당에서 먹는다. 밥은 무조건 절반을 덜어내고 나물 반찬은 배로 집어 온다. 식후에는 11층 연구실까지 걸어서 올라간다. 저녁도 밖에서 먹을 때가 많다. 고깃집이나 횟집에 가면 오이나 무 채로 먼저 배를 채운 뒤 상추나 깻잎 두 장에 고기를 싸서 먹는다. 이 밖에 오후에 허기를 느끼면 100% 오렌지 주스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는다.

다음은 만보 걷기. 출퇴근 수단은 지하철이다. 서울지하철 4호선 총신대역에서 출발해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 뒤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길을 따라 서대문의 병원까지 걸으면 만보계 수치는 3500보. 걸을 때는 운동이 되도록 속도를 낸다. 신발은 굽 없는 캐주얼화를 신고 반드시 빈손으로 다닌다. 가방을 들면 차를 타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다 손이 가벼워야 활기있게 바른 자세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길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앉아 있게 된다. 아무리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도 만보계를 보면 8500∼9000보다. 만보를 채우기 위해 저녁에는 산책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를 걷거나 가볍게 뛰면 운동도 되고 TV 보는 시간도 줄고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 1석 3조다.

운동을 하지 않는데도 식이요법과 만보 걷기만으로 빠진 살을 유지하는 게 의사인 나로서도 신기하다. 아무래도 체질이 바뀐 것 같다.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26일이다.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 의대 임상영양학과 비만연구센터 초빙교수로 있었는데 대학 내 다른 실험실에서 운동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으니 자원하라는 공고를 보았다. 300달러를 준다는 말도 유혹적이었지만 이 참에 살좀 빼보자는 생각도 컸다.

사실 비만 클리닉에서 환자들에게 뱃살을 왜 빼야 하는지 열변을 토하는데 환자는 흰 가운 속에 가려진 내 풍만한 배를 힐끗 쳐다보며 ‘그러는 너는 왜’ 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키 169㎝에 몸무게 72㎏. TV를 볼 때면 습관적으로 맥주를 마시며 착실히 늘려온 뱃살은 식후 바지 단추를 풀러야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 결심했어. 총각 시절 샤프했던 이미지를 되찾는 거야.” 프로젝트의 이름은 ‘건강 다이어트’. 체중을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제대로 먹다보면 체중 감량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선물이라는 뜻에서다.

먼저 운동을 시작해 병원 내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해 주 4회, 한번에 30분씩 걷기와 가볍게 달리기를 했다.

건강 다이어트의 핵심은 ‘적당히’ ‘다양하게’ 먹는 것. 하루 1000㎉ 미만으로 섭취하면 체지방뿐 만 아니라 근육량까지 줄어들어 건강은 물론이고 몸매까지 망친다.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 부족으로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도 높다.

식사량은 평소의 3분의 2로 줄였다. 배가 고프면 먹고 포만감을 느끼면 수저를 놓았다.

먹은 지 3시간 이내에 배가 고프면 일단 물을 한 잔 마시고 그래도 고프면 먹었다. 먹는 횟수는 많아졌지만 총 섭취 칼로리는 줄었다. 한번에 먹는 양을 줄이니 차츰 전보다 적게 먹어도 금방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하루에 대여섯번 음식을 나눠 먹던 것이 점차 아침 점심 간식 저녁 네 번으로 일정해졌다.

‘다양하게’ 먹는다는 것은 곡류군 어육류군 채소군 등 식품군 사이는 물론 같은 식품군 내에서도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라는 뜻이다. 곡류를 예로 들면 하루는 식빵, 이튿날엔 시리얼 하는 식이다. 아침에는 종류를 바꿔가며 샐러드를 먹었다. 가끔 오트밀 빵이나 정백하지 않은 통낟알로 만든 시리얼을 저지방 우유와 함께 먹기도 했다. 과일도 하루는 사과, 이튿날은 바나나 등으로 다양하게 먹었다.

다이어트를 할 때는 지방을 무조건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건강을 생각한다면 식물성 지방과 생선에 함유된 불포화 지방은 먹어줘야 한다. 나는 닭 살코기, 생선, 올리브유를 먹어 지방을 섭취했다.

또 육류 섭취를 의도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특히 이 경우 부족해지기 쉬운 비타민 B₁₂를 매일 복용했다. 비타민 B₁₂는 장에서 총 섭취량의 1%만 흡수되기 때문에 용량이 적어도 100㎎은 돼야 한다. 나는 술을 끊다시피 했는데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은 비타민 B 복합제를 먹는 게 좋다.

12주 운동 프로그램이 끝나고 체중을 재보니 62㎏, 허리는 31인치. 헬스클럽 찾는 횟수가 점차 줄더니 결국 2주가 지나면서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게 됐다. 운동을 끊은 지 한달째 되는 날 심폐 지구력과 체내 대사율을 검사해 봤다. 운동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설마했지만 운동으로 얻은 체력의 85% 이상을 잃었다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운동 없이도 체중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건강까지 지킬 수는 없었다.

성균관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강북삼성병원 비만클리닉ywoopark@sams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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