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은 책]밖에서 보니 더 잘보이는 道

  • 입력 2002년 1월 25일 17시 36분


□노자와 장자

지난 반년간 미국에 가서 내가 뒤진 책들은 엉뚱하게도 ‘도(道·Tao)’에 관한 것이 많았다. 가기 전에도 번역된 책들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게 ‘무위(無爲)’라는 단어는 알 듯 모를 듯 했었다. 라캉이라는 프랑스 현대 사상가를 읽다보면 노장(老莊)과 만나는 지점에 이르게 되는데 서양에 가서 동양의 책을 읽는 것도 별미였다. 김치의 참 맛을 누리듯이, 침침해진 눈을 맑게 씻듯이, 밖에서 보는 자신의 모습이 더 정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미국의 도서관 서가에서 가장 많이 본 책은 몇 번이고 새롭게 번역된 노자의 ‘도덕경’이었다. 책장이 노랗게 닳은 1900년대 초부터 최근 발굴된 대나무 쪽에 쓰인 시귀의 번역까지 여러 종의 도덕경이 눈에 띈다. 그리고 다음이 노장사상에 대한 이론서들이다. 미국의 대학에서 중국사상을 가르치는 중국학자들이 영어로 쓴 책들, 중국에 살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인 학자가 쓴 책들이 있다. 노자의 시보다 장자의 시는 번역본이 적었지만 아주 정확히 잘된 것이 있어 나는 저녁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두 편씩을 읽었다. 반가움에 줄을 치고 깨알같이 뭔가 적어넣기도 했고 하루의 불안을 지우면서 스스르 잠으로 빠져드는 수면제처럼 느끼기도 했다.

아침에 밤을 세 개, 저녁에 네 개 준다고 하니 화를 내던 원숭이가 아침에 네개, 저녁에 세 개를 준다니 만족해한다. 손해 없이 둘 다 만족하는 길 찾기가 정치요 외교이고 삶의 방식이라면 우리는 밤 네 개 앞에서 환호하는 원숭이가 아닌가. 죽음의 병상 앞에서 화려한 매장을 준비하려는 제자들에게 장자는 말한다. 내가 죽은 후 그냥 놓아두면 솔개가 먹고 묻으면 두더지가 먹는데 너는 왜 솔개에게 인색하고 두더지에게 이익을 주려느냐. 노자는 원론적이지만 장자는 풍자와 기지가 넘친다.

마침 한국의 제자가 이강수 선생님의 ‘노자와 장자’(도서출판 길)를 보내주었다. 영어로 쓰인 책들을 읽고 이 책을 읽으니 더 분명하게 의미가 들어온다. 참 이상하다. 지식도 지름길이 아니라 돌아가야 한다. 영어로 노장 사상을 읽고나니 라캉이 더 잘 이해되고 라캉을 이해하고 노장을 읽으니 ‘무위’가 무엇인지 명확히 들어온다. 우리의 삶은 구경할 게 참 많다. 이것저것 보면서 천천히 돌아가는 노예의 삶이 곧장 지름길로 가는 주인의 삶보다 낫다더니 정말이다.

누군가 말한다. 관광도 이제는 ‘맞춤’이라고. 구경꾼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한다고.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독특하고 정갈한 우리 음식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가장 알고싶어하는 선불교나 ‘도’라고 부르는 노장사상을 마련하면 어떨까. 이런 자료들을 그들에게 잘 소개하고 그 흔적들을 보여주어 동양의 신비로움과 독특한 지혜를 전해주는 것도 자연스러운 외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권택영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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