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여성이 경쟁력이다(하)]사회진출 발목잡는 보육정책

  • 입력 2002년 1월 3일 18시 06분


한국 여성들은 자녀양육 때문에 직장에 다니기 어렵다. 99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25∼29세 기혼 여성의 71.8%가 취업을 하지 않는 이유로 ‘자녀양육’을 들었다. 한창 일할 나이인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의 취업률이 낮은 것은 바로 이 문제 때문.

‘여성인력 활용이 선진국 진입의 열쇠’인 점을 감안할 때 결국 육아 정책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과제다.

▼글 싣는 순서▼

- <上>한국경제 '절반의 자원'이 버려져있다
- <中>취업서 제외…승진서 낙오…
- <下>사회진출 발목잡는 보육정책

▽“보육시설의 양과 질을 높여라”〓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姜又蘭) 수석연구원은 “여성인력을 활용하려면 회사가 여성을 고용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보육에 대한 고민 또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만 3세 미만 영아를 맡을 수 있는 시설이 태부족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보육시설의 3∼5세 수탁률은 49.9%에 이르지만 0∼2세는 7%에 그치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보육시설의 양뿐만 아니라 보육의 질과 다양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전문직 여성인 이모씨(33)는 “2세 무렵까지는 받아주는 보육기관이 없어 아이를 집에서 키웠지만 3세 이후엔 조건에 맞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종일반이라 해도 오전 8시에 맡기고 오후 6시경에는 데리고 와야 하는데 야근이 잦은 직장 여건으로서는 ‘그림의 떡’이라는 것. 그는 여전히 보육기관 비용의 2, 3배를 주고 탁아모를 고용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4500여 곳에 12만여명의 아동이 이용하던 보육시설은 약 2만여 곳에 68만여명을 수용하는 규모로 늘어났지만 정작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양적으로는 팽창했지만 내실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아와 장애아 등을 위한 특수보육 서비스와 시간제 보육, 방과 후 보육, 야간 보육, 24시간 보육, 휴일 보육, 고가 보육 등 다양한 보육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날로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거북이 걸음’일 뿐이다.

▽공보육으로 해결해야〓한국여성개발원 유희정(柳熙貞) 박사는 “이런 현상은 95년 이후 정부가 추진한 민간 중심의 보육정책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체 보육시설 중 놀이방 등 민간시설이 92.4%에 이르는 반면 국공립 보육시설은 6.6%에 불과한 현실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시설에 다양한 보육 요구에 부응하는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

유 박사는 “결국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할 곳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공공보육기관이며 민간기관도 정부 지원을 통해 공공보육기관처럼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여성개발원 김태홍(金泰洪) 박사는 “직장보육시설을 세우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보육에 대한 기업의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급인력은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삼성경제연구소 강 수석연구원은 “고용시장의 유연성이 적은 한국에서 대졸 여성들의 경우 한번 직장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L자형’ 구조를 갖는다”고 밝혔다. 일단 확보된 인력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그는 ‘고부가 유연 근로제’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근로자가 같은 업무를 하되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해 근로자에게 ‘숨쉴 공간’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IBM사나 미국 4위의 회계 컨설팅사인 딜로이트가 채용하고 있는 모델이다.

여성계도 여성인력 활용을 위해 선진국에서 육아 휴직의 변형된 형태로 활용되는 단축근로시간제나 시차제 근무, 노동시간 변경 등 다양한 제도를 운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육으로 인한 공백 이후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여성들의 일솜씨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김 박사는 “여성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린 일본의 경우를 참고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은 99년부터 ‘육아가족간호휴직법’ 등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경력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단축근로시간제, 노동시간 변경 등을 허용하는 한편 휴직사원의 빠른 복귀를 위해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직업훈련을 시키고 있다.

▽부모 국가 기업의 ‘윈-윈 게임’〓김 박사는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반적으로 가족친화적 기업과 국가로 풍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 키우기는 사회적 과제라는 관점을 갖고 아빠들도 가사와 육아에 동참하며 기업과 사회, 국가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부모 국가 기업의 윈-윈 전략’이라는 얘기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