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김화영-황현산 교수 '서정주의 시세계' 상반된 평가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19분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1915∼2000) 시인을 둘러싼 논쟁이 제 2라운드를 맞았다. 지난봄 고은 시인이 발표한 ‘미당 담론’으로 촉발된 제 1라운드가 주로 미당의 역사적 과오(친일시와 신군부 협조)에 초점을 맞춘 뜨거운 논쟁이었다면, 이번에는 논의의 촛점이 시 자체에 대한 미학적 평가로 옮겨지면서 차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회전(會戰)의 단초를 연 이는 문학평론가 김화영 황현산 교수다. 각각 친(親)미당·반(反)미당 진영의 후방에 머물며 직접적인 논쟁을 삼가온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고려대 불문학과에 함께 몸담고 있다.

▼김화영 교수▼

김교수는 최근 출간된 ‘미당 서정주 시선집’(시와시학사)을 내면서 미당 옹립에 나섰다. 미당의 시집 15권에 실린 899편의 작품 중에서 백미 90여편을 공들여 골랐다. 경기고 재학시절 미당에게 배운 김 교수는 미당의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특히 그는 서문 ‘나그네의 길가에 놓아둔 시’에서 초기작 ‘동천’과 말기작 ‘겨울 어느날의 늙은 아내와 나’를 연결지으며 미당시의 해학성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미당의 웃음은 공감과 연민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거리이며 고통을 극복하는 지혜”로 “집착의 사슬을 끊어주는 작파(斫破)의 날개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특히 주목하는 ‘작파’라는 개념은 이번 시선(詩選)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그는 “무엇인가 자기 이익이 되는 것을 따라가다가 중간에서 ‘에라, 관둬라’ ‘까짓, 때려쳐라’는 식의 너그러움의 정서가 미당의 시와 인생에 면면하게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라의 어느 사내 진땀 흘리며 / 계집과 수풀에서 그 짓하고 있다가 / 떨어지는 홍시에 마음이 쏠려 / 또그르르 그만 그리로 굴러가버리듯 / 나도 이젠 고로초롬만 살았으면 싶어라”는 ‘우중유제(雨中有題)’를 비롯해 ‘낮짝’ ‘가벼히’ 같은 작품을 예로 들었다.

▼황현산 교수▼

황교수는 계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린 ‘서정주 시세계’를 통해, 미당의 시가 가진 너그러움의 정서가 도리어 “미당 민족주의의 본질적 내용인 허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 교수는 특히 미당의 대표시집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등에서 전설과 주술을 해학적 토속어로 표현한 작품들이 인간의 노력이 닿지않는 갈등 없는 세계를 “통속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본다. 이런 ‘통속화된 신화적 관념’은 ‘어떻게 말해도 좋기에 가능한 한 부풀려 말하는 방식’으로 미당의 시에 작용했으며, 이것이 ‘절정기 미당의 무갈등 시학’의 근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미당은 늘 낡은 것을 세련된 언어로 반복”했을 뿐이며, “미당이 ‘마술적으로 사용한 부족언어’는 혈연과 지연의 토착정서에 호소하여 모든 논의의 외부에 서는 말들이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시적 자유를 만끽한 미당의 작품은 “팔자를 거역하는 현실의 모든 시도를 비웃는” “패배주의적 자기방기”에 가까운 것이다. 세속에 상응하지 않는 신화적 세계를 고집함으로써 “미당의 시세계는 책임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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