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날아가버린 '건축가의 꿈', 미완의 건축물 이색만남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19분


건축가의 설계는 구체적인 건축물로 형체를 갖출 때 완성된다. 그러나 모든 설계가 건축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건축주의 사정이나 국가 정책의 변화 때문에 건축 계획이 취소되는 경우가 있다. 현상 설계 공모전에 2등으로 당선된 경우, 1등 하나만 건축되기 때문에 2등은 영원히 미완으로 남기도 한다.

그런 미완의 건축물을 만날 수 있는 이색 전시가 마련됐다. 한국건축가협회 주최로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완의 장(場)(Unbuilt Sketches and Drawings)’. 올해초 논란 끝에 건립 계획이 취소된 ‘천년의 문’을 비롯해 강철희 김석철 김태우 동정근 박찬무 유희준 이선영 임채진 조택연 등 50여 건축가의 사연있는 작품(스케치와 드로잉)들을 선보이고 있다. 미발표 혹은 계획 중인 작품도 일부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영섭 건축문화설계사무소장의 설명.

“건축되지 못한 건축 설계에는 건축가의 열정과 함께 비애가 담겨 있습니다. 미완이라는 이유로 작가의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 전시는 미완의 작품을 돌아보면서 날아가버린 꿈, 파랑새를 다시 불러들이는 하나의 굿판입니다.”

전시는 우리 사회의 건축 문화에 대한 반성의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설계는 건축가의 아이디어로 가능하지만 구체적인 건물로 태어나기 위해선 엄청난 사회적 자본이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장점과 단점이 드러나기 마련. 특히 우리 사회에선 정치와 자본의 논리에 의해 건축가의 순수한 뜻이 크게 왜곡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올해 건설 계획이 취소된 이은석 경희대교수의 ‘천년의 문’. 물론 이 작품은 원형의 디자인은 탁월했으나 구조역학적으로 실제 건립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천년의 문’은 그같은 구조상의 문제가 일관없는 정책과 맞물리면서 미완의 작품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천년의 문’은 한국 건축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반면 조택연 경기대교수의 ‘2042 도시 패러다임의 스펙트럼’은 사이버 공간의 건축설계이기 때문에 당장 현실화하기가 불가능한 작품이다. 그러나 언젠가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천년의 문’과 다른 유형의 미완의 설계다. 이번 전시는 또 설계 드로잉과 스케치가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 예술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건축가들의 상상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전시의 매력.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사회적(공적) 문제보다 개인적(사적) 사정으로 인해 미완이 된 작품이 더 많이 나와 아쉽다. 미완의 건축을 통해 완전한 건축을 꿈꾸고 있는 한국 건축계이지만 아직 그 꿈은 미완인 셈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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