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요절 가수' 김현식-배호,우상은 갔어도 팬은 영원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8시 37분


《김현식과 배호. 서른 살 안팎의 젊은 나이에 숨져 가요사의 전설이 된 두 사람은 록 보컬리스트로서 터져 나오는 발성(김현식)과 안개처럼 낮게 내려앉는 저음의 창법(배호)으로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었다. 1일은 김현식의 11주기, 7일은 배호의 30주기였다.

이들은 학교를 중퇴하는 등 쓸쓸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숨진 후에 노래들이 더욱 광휘를 발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다. 차중락 김정호 김광석 등 이들과 엇비슷한 시기에 요절한 가수들도 있지만 김현식과 배호는 추앙에 가깝도록 따르는 ‘사후(死後) 팬들’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 김현식

△58년 1월7일 서울 출생

△75년 서울 명지고 1년 중퇴

△73∼80년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활동

△80년 1집 음반 ‘봄여름가을겨울’ 발표

△82년 김경자씨와 결혼. 슬하에 아들 완제군

△90년 5집 ‘넋두리’ 발표 후 와병

△90년 10월 유작 음반(6집) ‘내 사랑 내 곁에’ 발표

△90년 11월1일 폭음에 따른 간경화로 타계

△91년 ‘김현식 신드롬’ 가요계 강타. 6집 100만장 판매

△96년 ‘사랑의 불씨’ 등 미발표 유작 5곡 발견

◆ 김현식의 팬들

그에 대한 일화는 일종의 전설로 채색되고 있다. “김현식은 하모니카를 소주에 담갔다가 불곤 했다” “경기 양평에서 김현식의 모창 가수가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김현식의 혼에 들씌워서 부르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들이 팬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그가 숨진 후 5년간 유작 음반 ‘내 사랑 내 곁에’는 300만장이 팔려나갔다. 복제판 등을 포함하면 오래 전에 500만장을 넘었다고 말하는 가요계의 관계자도 있다.

이 같은 거대한 수의 팬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다음 세이클럽 드림위즈 등에는 ‘사랑의 가객 김현식’ ‘비처럼 사랑처럼’ 등 10여개의 추모 홈페이지가 마련돼 있다.

‘사랑의 가객 김현식’의 운영자 박영호씨(32)는 “올해 2월 문을 연 이래 연인원 3만여명이 다녀갔다”며 “이들 대부분은 김현식이 80년대 후반 불꽃처럼 활동할 당시 그의 외로운 열정에 매료됐던 386세대들”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학동 사거리 인근에 바 휴(Bar Hugh)를 열고 있는 김주천씨(31) 역시 김현식의 골수팬이다. 그는 김현식이 숨진 후 매년 홀로 영정에 소주를 올리고 제(祭)를 지내오다 1일 처음 바 휴에 사람들을 모아 제를 올렸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해온 그는 “99년부터 2년간 일본 도쿄에 머무를 때에도 제를 지냈다”며 “1일에는 30대 손님 20여명이 찾아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현식이 만취한 채 작곡했다는 ‘한국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며 “곡 전체에 녹아있는 블루스와 솔이 깊은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24일 대전시민회관 소극장에서는 오후 4시, 7시 두 차례 김현식 추모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 배호

△42년 4월24일생. 본명 배만금. 부친은 독립투사 배국민

△부산 삼성중 중퇴. 카바레 청소부, 드럼 치는 소년 악사로 성장

△64년 ‘두메산골’ 등을 취입, 가수 데뷔

△66년 첫 음반 ‘돌아가는 삼각지’(배상태 작곡) 발표

△71년 11월초 마지막 노래 ‘마지막 잎새’ 취입

△71년 11월 7일 초년시절 생활고로 얻은 신장염이 악화돼 타계

△81년 MBC 한국가요 베스트 1위로 ‘돌아가는 삼각지’ 선정

△93년 9월 제1회 배호가요제 개최됐으나 98년 중단

△2001년 11월13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노래비 건립

◆ 배호의 팬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잃어버린 그 사람을 아쉬워하며/비에 젖어 한숨쉬는 외로운 사나이가/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66년 작곡가 배상태씨(67)가 만든 ‘돌아가는 삼각지’는 아직도 많은 이들을 배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13일에는 팬클럽의 청원에 의해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노래비가 세워졌으며 17일에는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02-876-0608)’이 조촐한 발족식을 가졌다. 19일에는 30주기 추모 앨범이 ‘불멸의 가수 배호’(지구레코드)라는 제목의 CD 4장으로 나왔다.

경기 장흥의 신세계 공원묘지에 마련된 배호의 무덤에는 아직도 팬들이 찾아온다. 배호에게 보내는 편지를 코팅해서 무덤 앞에 돌로 눌러놓는가 하면 해외로 나가기 전에 한번보고 싶다며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안내를 부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럴싸하게 녹음한 배호의 모창 음반을 방송사에서 배호의 노래라고 잘못 틀면 항의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공식 홈페이지(www.baeho.com)를 비롯해 5, 6개의 추모 사이트가 마련돼 있으며 글을 올리는 이들은 대부분 40대 중반 이상의 지긋한 중년 남녀들이다.

배호의 전국모임을 준비하는 팬인 안선광씨(46·공무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배호 팬의 절대 다수는 그가 71년 숨지기 전 5년간 불꽃처럼 활동할 당시 저음의 매력에 빨려들었던 현재 50대 안팎의 팬들”이라며 “굳이 이름 붙이자면 ‘제3공화국 세대(61∼72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호 노래의 애절하고 구슬픈 가락과 노랫말에는 어려웠던 그 시절을 살아냈던 이들을 위로하는 어떤 강렬한 힘이 있다”며 “이 같은 위로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그의 노래를 찾고 있으며 이제는 젊은 세대들도 그의‘사후 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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