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운하씨(37·사진)가 최근 발표한 장편 ‘137개의 미로 카드’(문학과지성사)의 줄거리다. 이 소설은 여러가지 면에서 평지돌출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소설 형식을 해체한 ‘반(反) 문학적 문학’이 보여주는 파격성이 이 소설을 돋보이게 만든다.
책 표지에 적힌 ‘소설’이란 글자만 없다면 이 작품이 실제로 실종된 소설가를 위한 헌정집으로 깜박 속기에 충분하다. 실종의 경과, 137개 퍼즐 내용, 여러 평론가의 다양한 연구논문, 작가의 미발표 원고, 애인과의 인터뷰까지. 이를 한데 묶은 백서(白書) 형식이 한 소설가의 창작품으로 보기 힘들 만큼 정교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완성된 책이 아니라 생성되어가는 중인 책입니다. 137개의 카드를 누가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따라 무한대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책에 실린 가짜 평론은 몇 개의 샘플에 불과합니다.”
이 소설은 ‘실종’이란 추리소설적 장치를 통해 독자를 ‘기묘한 미로 게임’으로 유인하자만 애초부터 출구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독자 스스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으면서 출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읽는 소설’이 아니라 ‘쓰여지는 소설’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김씨가 이 소설에서 노린 것은 독자와의 지적 게임이 아니라 “탈근대시대에 문학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탐색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몇 해 동안 수 많은 철학서와 동서양 고전을 탐독하며 작품을 구상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소설은 앞으로 작가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명징한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의 해석에 따라 무한히 열려있는 텍스트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실종이란 모티브는 “신의 권능을 가졌던 전통적 소설가의 사라짐”이자 “가장 극단적인 문학의 부정”(107쪽)을 뜻한다.
김씨는 “지적 훈련으로 단련된 세계관이 없는 실험문학이란 공허한 유희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 월급의 반에 반도 안되는 인세 수입으로 사글세도 못내는 절대빈곤에서도 철학 미학 신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1995년 ‘죽은 자의 회상’으로 등단한 뒤 ‘언더그라운드’(1998) 등 세 권의 소설을 출간했고, 지난해에는 ‘자살 금지법’으로 동아일보 제정 인산문예창작펠로쉽 대상자로 선정돼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