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수시모집 합격생들 학교-교육당국 무관심에 방치

  • 입력 2001년 9월 5일 19시 03분


올 1학기 대학입시 수시모집에 합격한 서울의 한 특목고 3학년생 C양(19)은 요즘 소설책과 토플(TOEFL)시험 준비용 책만 달랑 가방에 넣고 등하교한다. C양은 수업 시간에 소설을 읽거나 토플 모의시험 문제를 푼다. 대학입시용 수업이 C양의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교사도 학생도 C양이 학교에서 ‘허송세월’한다는 것을 안다. 담임 교사는 C양에게 성적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이나 수업자료 만들기 등 ‘허드렛일’을 시킨다. C양은 “이미 대학에 합격했는데 다른 학생과 똑같이 수업을 들으며 다시 입시 준비를 하란 말이냐”며 요즘 생활에 분통을 터뜨렸다. 1학기 수시모집 합격생들이 학교와 교육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겉돌고 있다. 이들은 학교에서 입시 준비에 바쁜 친구와 학교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겉도는 수시모집 합격생〓이화여대에 합격한 서울 Y여고 3학년생 C양(19)은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마음이 영 편치 않다. 같은 반 친구들이 “대학에 합격했으니 내신성적은 우리에게 양보하라”고 자주 말하기 때문이다.

서울 K고 3학년생 K군(19)은 학교에서 ‘왕따’ 취급을 받는다. 수업 시간에 졸면 친구들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느냐”고 핀잔을 주고, 책을 보면 “대학에 합격하고도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놀리기 일쑤다. 참다 못한 K군은 관공서에서 체험학습을 하겠다며 허위 서류를 학교에 제출하고 영어학원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있다.

K군은 “친구들 눈치 보느라 학교에 나오면 바늘방석이지만 수시모집 합격생을 ‘나몰라라’하는 학교나 교육 당국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일선 고교와 대학의 무관심〓대부분 고교는 수시모집 합격생들을 돌볼 여유가 없다. 이미 대학에 합격한 학생보다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 때문에 바쁘기 때문이다.

1학기 수시모집 합격생을 10명 이상 배출한 서울시내 34개 고교 가운데 수시모집 합격생 대상 교육프로그램이 전혀 없는 학교가 23개교로 전체의 68%에 달한다. 대부분 학교는 이들이 얌전히 학교에 앉아 다른 학생들의 공부에 ‘폐’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서울 S여고 3학년 김모 교사는 “2학기 수시모집 원서 작성 때문에 밤을 꼬박 새는 경우도 허다한데 어떻게 합격생까지 돌볼 수 있느냐”면서 “이들을 학교 수업에 참여시키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1학기 수시모집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한 대학들도 개강 이후 대부분 예비대학 프로그램 운영을 중단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방학 중 학점 취득 등 예비 대학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합격생 중 지방 학생이 많아 예비대학을 운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책 없는 교육당국〓일선 고교와 대학이 합격생 돌보기를 미루기에 급급하지만 교육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침에 따라 16개 시도교육청이 수시모집 합격생 교육프로그램 운영 계획을 제출했지만 실제로 이행하는 곳은 서울시교육청뿐이다. 참가자는 서울시내 수시모집 합격생 1316명 가운데 67명에 불과하다.

대구시교육청은 한 평생교육원이 개설한 일반인 대상 영어와 컴퓨터 프로그램 강좌를 수시모집 합격생 교육프로그램으로 교육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평생교육원측에 확인한 결과 수시모집 합격생 교육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 지정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 같은 문제는 교육 당국이나 개별 고교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매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선 시도교육청으로부터 계획을 일괄 접수한 뒤 아직까지 이행 실태를 점검하지 못했다”면서 “실태 파악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