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권성우교수 "김미현씨 반론을 반박한다"

  • 입력 2001년 8월 9일 17시 47분


'읽히는 비평'을 두고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가 김미현씨의 반론(본보 7월31일자 A14면)에 대한 재반박문을 보내왔다. 김씨의 평론집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의 서평으로 촉발된 두 사람의 논쟁은 문학의 위기에 따른 바람직한 비평의 자리매김을 위한 쟁점을 드러내면서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면 사정상 권 교수의 기고문을 동아일보 인터넷신문인 '동아닷컴'(www.donga.com)에 싣는다. 논의 형평성 차원에서 김씨의 재반론문도 추후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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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나 논쟁이 적어도 최소한의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논의가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필자의 서평에 대한 김미현의 반론은 실망스럽다.

그 글은 시종일관 보편적인 비평적 당위에 해당하는 진술로 이루어져 있어, 반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추상적인 진술에 가깝다. 김미현이 반론에서 주장하는 쉽게 읽히면서도 논리와 섬세한 분석력을 확보한 비평의 필요성을 그 어떤 비평가가 부인하겠는가?

여기서 논점을 분명히 해두자. 필자의 글은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라는 비평집이 과연 김미현의 주장대로 바람직한 의미의 가독성과 대중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하는 차원의 구체적인 문제제기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김미현은 지극히 상식적인 문학원론 차원의 얘기를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적 우월감에 빠진 현학적인 분석보다는 문학을 억압하지 않는 재미있는 분석이 중요하다"는 식의 발언에 누가 동의하지 않겠는가?

부정적인 의미의 현학(이론)과 긍정적인 의미의 대중성을 어떻게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가?

분명히 말하건대, 의미 있는 이론과 난해함의 세계를 충분히 존중해주자는 것, 깊이와 논리가 희석되어 쉽게만 읽히는 비평의 위험을 경계하자는 것이 내가 취하고 있는 기본적인 입장이다. 말하자면 단순히 '읽히는 비평'이나 명명법에 대한 애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식의 읽히는 비평이며 어떤 식의 명명법인가를 한번 따져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안 읽히는 평론은 축구의 자살골과 흡사하다'라는 식의, 다른 비평적 선택에 대한 조롱에 가까운 김미현의 주장은, 비평의 다양한 층위를 너무나 단순화시킨 오만한 견해가 아닌가. 제임슨이나 루카치 식의 정교한 이론적 비평이 과연 읽히는 비평에 대한 강박 속에서 씌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미현은 이런 식의 '읽히는 비평'에 대한 배타적인 경사가 때때로 자신의 비평을 깊이와 분석, 논리가 약화된 '읽히기만 하는 비평'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원적으로 성찰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정말 중요한 과제는, 자신이 논리와 깊이를 갖춘 '읽히는 비평'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독성/분석의 깊이, 읽히는 비평/이론적 비평, 대중적 호응/비평의 깊이 등과 같은 이분법적 테마들이 대체로 행복하게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성실하게 검토해 보는 작업이 아닐까?

감히 말하자면, 그 미학적 가치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느냐는 차원에서 평가하기에 가장 위험한 장르가 비평이라고 생각한다(비평은 숙명적으로 이론과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메타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가령, 김우창의 비평은 상대적으로 난해하기 때문에 김미현의 비평에 비해서 가치가 떨어지는가? 그래서 나는 이른바 '읽히는 비평'을 추구하는 비평가일수록, 이론과 철학, 관념 앞에서 더욱 겸손해져야한다고 믿는다.

굳이, 김미현의 논리에 대해서 재반론을 쓴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정말 제대로 된 비평의 매혹과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김미현의 비평에 대한 저널리즘과 평단의 과잉 해석이 우리시대 비평의 방향성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어 보자. 현실, 이론, 철학의 울창한 숲을 제대로 통과하지 않은 비평이 이 지독한 '비평의 위기'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권성우(문학비평가·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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