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최초 신유박해 보고서 '황사영 백서'원본 한국 온다

  • 입력 2001년 7월 12일 18시 33분


황사영 백서 영인본.
황사영 백서 영인본.
‘최초의 신유박해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황사영(黃嗣永) 백서’ 원본이 76년만에 한국에 돌아와 서울 합정동 절두산 순교박물관에서 9월 1∼30일까지 전시된다.

황사영 백서는 1925년 당시 조선교구장인 뮈텔 주교가 로마에서 거행된 조선 순교자 79위 시복식 기념으로 교황 비오 11세에게 선물한 이후 교황청 민속박물관 문서고에 보관돼 왔다. 이 백서는 교황청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관련 유물 500여점 중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으로 황사영 백서를 국내에 전시하기 위해 교황청과 접촉하고 돌아온 한국교회사연구소 최승룡 신부는 “황사영 백서는 상설 전시품목이 아니어서 민속박물관을 직접 방문해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또 교황청의 수장품이 외부로 반출돼 전시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최신부는 “하얀 명주천에 가는 붓으로 깨알같이 쓰여진 글씨는 아직도 200년전처럼 선명했다”며 “백서의 내용을 떠나 백서의 모습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번에 전시될 자료에는 황사영 백서 외에도 ‘1811년 신미년 교황 성하에게 보낸 조선 교우의 서한(일명 신미년 백서)’과 ‘1824년 교황 성하에게 보낸 서한’ ‘1835년 교황 성하에게 보낸 서한’ 등도 포함된다. 이중 특히 1824년 서한은 당시 교황청 포교성 장관인 카펠라리 추기경을 감동시켰으며, 그가 나중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의 자리에 올라 북경교구로부터 조선교구를 분리시키게 한 계기가 됐다.

또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화백이 그린 성화 연작 3점이 국내에 처음으로 들어와 이들 자료 4점과 함께 전시된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내부 복도에 걸려있는 이들 성화는 장 화백이 1949년 당시 노기남 대주교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1950년 노 대주교가 로마를 방문해 당시 교황 비오 12세에게 선물한 것.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세례자 요한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 김효주 김효임 강완숙 등 여성 순교자 3인의 모습, 김대건 유대철 남종삼 등 남성순교자 3인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이들 성화는 전시후 수리 및 표구작업을 거쳐 다시 로마로 보내지게 된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황사영백서란?

황사영이라는 천주교 평신도가 1801년 일어난 신유박해를 피해 충북 배론의 김귀동 집에 있는 토굴에 은신하면서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기 위해 같은 해 9월까지의 신유박해 자료를 수집해 10월 29일 완성한 서한.

백서는 그 해 12월 2일 밀사편으로 북경에 보내질 예정이었으나 사전에 발각돼 11월 5일 황사영이 체포되면서 압수됐다. 압수된 문서는 의금부에 보관돼 오다 1894년 옛 문서를 파기할 때 발견돼 당시 뮈텔 대주교에게 전달됐고 1925년 조선 순교자 79위 시복식때 로마로 보내졌다.

백서는 A3용지보다 약간 큰 가로 60cm, 세로 40cm 크기의 백색 비단에 1만3000여자의 한자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인 주문모(周文謨)신부를 비롯한 최창현 정약종 강완숙 등 신유박해 순교자 30여명의 순교열전 등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서양 선박의 파견 요청 등 외세의 힘을 빌어 신앙의 자유를 추구한 내용 등도 담겨있어 논란이 돼 왔다.

뮈텔 주교는 이것을 로마로 보내기 직전 이건영으로 하여금 원문을 필사하게 하고 이 필사본을 바탕으로 실물크기의 동판을 제작했다. 현재 절두산 순교박물관에 전시돼있는 것은 이때 만든 필사본과 동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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